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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권친화적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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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12 12:38 조회22,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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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선거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범위를 넓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대선 후보들의 인권 감수성이나 인권관련 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후보의 인권지수를 판별하기 전에 선거 자체가 인권친화적인가 하는 점을 먼저 따져 봐야 한다. 선거절차에서부터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인권 대통령을 뽑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권 원칙에 근거한 선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알맹이 없는 정치수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마 이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가장 경험이 많고 권위 있는 기구는 유럽연합이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미 20년 전 EU조약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존엄성의 토대 위에서 역내 그리고 해외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 후 유럽연합은 전세계에서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감시단을 파견해 인권친화적 선거에 대해 노하우를 쌓았다. 유럽연합이 권장하는 인권 원칙에 따른 선거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의 참여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유권자 전원이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완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이 공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보장에 선거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미 해외의 한국공관에서는 10월 내로 국외부재자 신고 또는 재외선거인 등록을 이메일로 할 수 있도록 재외국민들에게 긴급공지를 내고 있다. 이는 참정권의 확대 측면에서 전향적인 조치다.


둘째, 차별금지의 원칙. 모든 유권자들이 선거참여에 있어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 EU는 특히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이 생계의 이유 혹은 정보부재 등의 이유로 선거참여에 간접적인 차별도 받아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형식적인 투표권 논리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재외국민에게까지 참정권을 보장해 주는 마당에 국내거주 국민에게 참정권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하기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 참정권의 간접차별 시정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야 한다.


셋째, 여성의 선거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인습과 전통 등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은연중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미 이런 차원을 넘어섰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여성 참정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더라도 여성의 실질적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EU는 어린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에게 투표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고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또한 과다한 선거공탁금 제도가 현실적으로 남성보다 형편이 어려운 여성의 피선거권을 제한하지는 않은가 하는 점도 짚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넷째,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투표권이 있는 이주자들에게 선거와 관련해 어떤 지원을 하는가. 예컨대 결혼이주로 농촌에 거주하는 외국출신 새댁에게 자국어로 된 선거관련 안내문이 제공되고 있는가. EU는 선거참관인에도 소수민족에 해당되는 시민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권고한다.


다섯째, 장애인들의 참정권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투표소의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점자 투표용지, 장애인 투표를 돕는 절차와 봉사자의 투명성 확보, 정확하고 쉬운 표현으로 된 안내문 등이 제공돼야 한다. 또한 장기입원 환자나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도 최대한의 투표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사실 인권친화적 선거란 상식적인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주주의를 보수적으로 좁게 해석하더라도 선거라는 절차만큼은 민주주의의 꽃으로 인정하는 게 슘페터 이래의 정설이다. 선거에 인권 원칙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선거의 정당성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이게 안 될 때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온 몸으로 직접행동에 나서게 된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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