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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바보야, 문제는 상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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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22 14:59 조회22,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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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 제목은 과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 진영의 선거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살짝 바꾼 것이다. 이미 수많은 변형들이 나온 터라 식상할 위험이 있음에도 이 문구를 다시 사용한 것은 근래 상식이 무너지고 정쟁이 부각되는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가령 안보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새누리당의 행태가 그렇다. 현 정권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소홀했나는 조금만 살펴보면 훤히 드러날 텐데 말이다.

남북 긴장국면을 초래한 대북정책의 실패는 제쳐두더라도, 이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추진한 것은 그간 지리적으로 국방상의 우려 때문에 보류되어 오던 대기업의 초고층 건물 신축 허가였다. 또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대로라면 대참패라고 할 천안함 침몰로 수십명의 장병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는데도 책임은커녕 오히려 기세가 등등했고, 군 지도부가 불온서적 지정이니 종북 척결이니 이념교육에 매달린 사이 북한 병사의 ‘노크 귀순’이라는, 코미디 소재로나 어울릴 한심한 사태를 낳고 말았다. 이런 집권당이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북방한계선(NLL) 발언이니 하는 상식 이하의 ‘폭로’를 하고 나서는 것일까?


 상식이 무너지기로는 정수장학회 논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는 측근비리나 추문으로 불리할 경우 “나와는 무관하다”는 도마뱀식의 꼬리자르기로 일관하다가 결국 여론에 떠밀려 사과하는 행태를 되풀이해 왔는데, 이는 그의 인식 수준이 국민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인혁당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둘이라는 발언은 사법체계에 대한 상식의 부족으로 대법원 측의 반박까지 받았다.


정수장학회는 국가기구의 조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강제헌납임이 밝혀졌으니 공소시효 탓에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못한다면 사회에 환원해야 마땅하다. 공직자는 재임시 받은 작은 선물까지도 일정 금액 이상이면 반납해야 하는데, 최고권력자 시절 강탈하다시피 한 남의 장학회를 사유재산처럼 물려받아 엄청난 연봉까지 챙겼으니 상식 이하의 일이다. 이 장학회가 이제는 “나와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지만, 설혹 법적으로야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사회문제가 되었으면 공인이자 대통령 후보로서 이 사태의 시시비비에 대한 판단을 밝히는 것이 정상이다.


정수장학회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상식으로 이해 안되기는 영남대 문제도 마찬가지다. 영남학원 정관에는 수년 전까지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논란이 되자 ‘설립자’로 바꾸었다지만 대통령직에 있을 때 두 개의 사립대학을 합쳐 한꺼번에 넘겨받아 그것을 세습까지 했으니 과연 이것이 민주국가에서 허용되는 일일까? 노 전 대통령이든 이명박 현 대통령이든 누구라도 이런 짓을 했다면 아무리 사학 소유권에 관대한 D신문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법하다.


물론 입장에 따라 달리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상식이고, 그 자체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미국 독립의 기폭제가 된 것은 유명하지만, 그람시는 상식이 어떻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는지 통찰한다. 때로는 상식을 넘어서는 어떤 인식이나 깨달음이 혁신에 필수적이기도 한 셈이다. 결국 문제는 사회가 도달한 상식의 수준이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정치인의 덕목이자 자질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과 상식 수준은 높아졌는데 박근혜 후보의 역사나 현실인식은 과거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으니 이런 혼선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사과하고 털어버린다 해서 금방 길러질 수 없는 것이 상식과 교양이다. 정수장학회와 마찬가지로 박 후보는 영남대도 “나와 무관”하다고 할 테지만, 최근 영남대 교수회는 특정 정치인과의 연루 의혹에서 벗어나 정치권에서 독립된 명문사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재단 이사회의 대폭 쇄신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사자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국민의 상식의 힘이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윤지관(덕성여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2012.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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