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 로널드 드워킨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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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22 15:08 조회22,0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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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불가능해 보이는 ‘통합’, 그래도 답은 ‘대화’뿐이다
최근의 일이다. 어느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모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난 이민 갈 거야.” 그는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서도 아들이 이민 가서 평생 못 봐도 좋다면 모 후보를 지지하시라고 부모에게 협박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저 과장해서 한 말이겠거니 하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그의 절박한 선언이 진심을 담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가 볼 때 그 모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절대 이웃으로 함께 살고 싶지 않은 무리들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 이성에 비추어 볼 때 이성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이들이며, 몸소 체험했거나 기억에 각인되어 있을 이 땅의 불행한 현대사를 망각한 건망증 환자들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던 이 후배가 이 땅을 떠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면 어쩌지 하고 말이다.
아마도 이 후배가 거부하는 모 후보만이 아니라 경쟁하는 다른 후보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 사람만은 절대 안된다고 지인들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한다. 이미 짐작하듯 술자리든 어디든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공론장에서 정책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일은 드물다. 물론 다가올 미래의 기획과 설계는 언제나 정치토론의 뜨거운 이슈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토론은 여러 후보들에 대한 인상비평이나 호불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사람을 씹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안주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긴 시간 그런 토론을 듣고 있노라면 공포스러운 느낌까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며, 심지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까지 증오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후보와 반대후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심성구조가 선거 때마다 표출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 땅의 현대사가 노정한 극악무도한 폭력과 수탈 때문이겠고, 이에 힘입어 자신의 기득권을 악착같이 지키면서 뻔뻔하게 민주화나 화해를 외치는 파렴치한 이들 때문이리라. 물론 이 파렴치한 이들이 볼 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허물고자 하는 반대 세력이 빨갱이나 종북의 무리들로 보일 터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대화가 불가능한 듯 보인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거나 이민을 가겠다는 판국에 어떤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 과연 이 두 세력이 그리는 다가올 미래의 공동체의 모습은 타협 가능한 기획과 설계에 기초해 있는가? 같은 나라에서 이토록 심하게 분열된 국민들이 이웃이란 이름으로 삶을 함께할 가능성은 어떤 규범과 이상에 기초해야만 할까?
드워킨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문학과지성사)는 이 절망적으로 보이는 물음들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다. 법률가이자 법학 교수답게 드워킨은 이 곤란한 물음을 실감나는 사례와 차분한 논리로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 세력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을 확인하면서 미국이 ‘두 문화’로 나뉘어 있다고 진단한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TV에서 볼 수 있는 동서부 연안 지역의 파란색과 중남부 지역의 빨간색이 변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 정치의 구도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그 어떤 정치 지도자도 당분간 이 분할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두 문화 간의 화해나 공존은 결코 뛰어난 정치 지도자의 손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드워킨의 진단이다. 현재 이 땅의 상황에 기대어 말하자면 ‘통합’은 한 후보의 구호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문화 사이를 가교하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드워킨의 대답은 ‘대화’이다. 진부해 보이는 이 대답을 제시하면서 그는 이 진부한 대답 외에는 대안이 있을 수 없음을 성실히 논증한다. 그런데 그가 제안하는 이 대화는 가령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 기억을 용서와 통합이란 이름 아래 억지로 화해시키려는 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대화를 이루기 위한 공통의 규범을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철저히 되물음으로써 도달하는 원리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드워킨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 정치사상을 틀지어온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과 책임을 그 원리로 제시한다. 너무나도 원론적으로 보이는 이 제안에 독자들은 식상해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억지 화해와 통합이 판치는 이 땅에서, 우직하고 강건하게 원리를 내세우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부디 사랑하는 후배가 이민을 떠나지 않도록 대화의 원리가 이 땅에 뿌리 내렸으면 좋겠다.
김항(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경향신문,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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