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종교와 정치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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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18 11:37 조회30,0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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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공인하던 전국 최고 명문고의 동창회에서 펴낸 회지를 몇 해 전에 읽어본 적이 있다(필자는 그 학교 출신이 아니다). 동기들의 생활을 조사한 특별기획 기사가 부록으로 실려 있었다. 10명 중 8명이 최상위 10%의 소득수준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종교 생활을 다룬 항목이 눈에 띄었다. 전체 응답자 중 신자 비율로 개신교가 44%, 천주교가 14%, 불교가 9%로 나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 조사에 비해 "특히 개신교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스스로 해설을 달아 놓았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개신교 또는 전체 기독교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많이 배우고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 전래된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를 통틀어 근대와 계몽을 상징하였다. 이 점에서 서구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났다. 서구에서 기독교는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상징했으므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전근대성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점이 사활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더 나아가 근현대성이 심화될수록 세속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했다.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의 초월적 성격은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근대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무속과 미신에 반대되는 일종의 합리적, 선진적 고등신앙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적 근대화와 반세속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 분단과 6ㆍ25를 통해 고착된 반공 이념과 기독교가 서로 호응하면서 기독교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요한 보루로 간주되었다. 게다가 원조, 유학, 이민, 경제, 군사, 정치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부각되면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국제화된 엘리트 계층이 선호하는 종교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확고한 주류 지배권력의 일부가 되었다. 그만큼 대사회적 책임이 막중해졌다.
최근 어느 대법관 후보의 종교 편향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전형적인 엘리트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저런 초보적인 오류를 저질렀을까 싶을 정도 수준의 과거 언행이 드러났다. 일국의 사법부 최고위직에 오르겠다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초대헌법에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조항, 즉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규정을 한번이라도 심사숙고 했는지 의심스럽다. 여기서 정교분리 원칙은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명령이다. 사적으로 어떤 신앙행위를 하든 자유이나 그것을 공적 영역에 섞지 말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김영삼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와 대통령직이 함께 행진을 했다. 종교색이 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천주교에서 유스토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세례 교인' 대통령들이 다스려온 온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분리 원칙이 요즘처럼 노골적으로 도전을 받게 된 데에는 현 정권의 잘못이 크다.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 "서울시 봉헌" 운운했던 분이 대통령이 되더니 특정교회 인맥을 드러내 놓고 중용하는 등 헌법원칙의 파괴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일반사회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평화와 통합에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아는 양식 있는 분들이 많다. 문제는 일부 철없는 기독교인들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점을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구원과 영생'만 강조하고 마음의 평안, 삶의 의미,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이들이 이런 식의 미성숙 신앙관으로 무장해 있을 때 그 종교는 한 공동체의 근본을 뒤흔드는 공적이 된다. 기독교인들의 '정상적 시민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7. 17.)
우리나라에 전래된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를 통틀어 근대와 계몽을 상징하였다. 이 점에서 서구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났다. 서구에서 기독교는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상징했으므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전근대성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점이 사활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더 나아가 근현대성이 심화될수록 세속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했다.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의 초월적 성격은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근대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무속과 미신에 반대되는 일종의 합리적, 선진적 고등신앙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적 근대화와 반세속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 분단과 6ㆍ25를 통해 고착된 반공 이념과 기독교가 서로 호응하면서 기독교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요한 보루로 간주되었다. 게다가 원조, 유학, 이민, 경제, 군사, 정치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부각되면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국제화된 엘리트 계층이 선호하는 종교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확고한 주류 지배권력의 일부가 되었다. 그만큼 대사회적 책임이 막중해졌다.
최근 어느 대법관 후보의 종교 편향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전형적인 엘리트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저런 초보적인 오류를 저질렀을까 싶을 정도 수준의 과거 언행이 드러났다. 일국의 사법부 최고위직에 오르겠다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초대헌법에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조항, 즉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규정을 한번이라도 심사숙고 했는지 의심스럽다. 여기서 정교분리 원칙은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명령이다. 사적으로 어떤 신앙행위를 하든 자유이나 그것을 공적 영역에 섞지 말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김영삼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와 대통령직이 함께 행진을 했다. 종교색이 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천주교에서 유스토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세례 교인' 대통령들이 다스려온 온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분리 원칙이 요즘처럼 노골적으로 도전을 받게 된 데에는 현 정권의 잘못이 크다.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 "서울시 봉헌" 운운했던 분이 대통령이 되더니 특정교회 인맥을 드러내 놓고 중용하는 등 헌법원칙의 파괴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일반사회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평화와 통합에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아는 양식 있는 분들이 많다. 문제는 일부 철없는 기독교인들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점을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구원과 영생'만 강조하고 마음의 평안, 삶의 의미,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이들이 이런 식의 미성숙 신앙관으로 무장해 있을 때 그 종교는 한 공동체의 근본을 뒤흔드는 공적이 된다. 기독교인들의 '정상적 시민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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