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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사장님'들의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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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9-24 12:50 조회22,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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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은 단연 ‘사장님들의 나라’다.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OECD 회원국들의 평균은 17%이나 한국은 무려 29%나 된다.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인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은 각각 7%, 12%, 12%, 14%에 불과하다. 자영업자가 많다는 게 문제될 건 없다. 남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 대다수의 생활이 점점 더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평균 1600여명의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다고 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비정규직 임금 정도의 월수입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자영업 시장의 열악함은 가히 극에 달한 듯하다. 인구의 큰 부분을 구성하는 자영업 섹터를 지금의 위기 상황에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통합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법은 두 가지다. 좋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많이 창출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 자영업 시장으로의 노동인구 유입을 줄이든가, 기존 자영업자들의 사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해법은 장기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한국의 현 상품생산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설비의 자동화와 불균형적 하도급 거래관계의 형성 등으로 유지되는 대기업 주도의 비용절감형 대량생산체계와 가격경쟁력에 의존한 수출지향 산업체계에선 고임금 숙련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많이 나올 수 없다.


반면 뒤의 해법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확립, 불공정 하도급 거래 질서의 개선, 대형마트 및 SSM 규제의 강화, 그리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지역별 공금융기관의 확대 등을 위한 주요 정책 몇 가지만 도입되어도 자영업 시장의 환경은 크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과연 어느 정당이 그러한 정책 도입을 책임지고 완수해낼 것인가이다. 한국엔 ‘중소상공인 정당’이라고 부를 만한 이념 혹은 정책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기한 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30% 가까이가 자영업자들이며, 그들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노동자의 88%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어느 정당이든 이 정도 규모의 집단으로부터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정당은 당장 한국의 최강 정당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지금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 해법이 채택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거대 집단을 전문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왜 누구도 이 상황에서 중소상공인의 정치세력화에 나서지 않는 걸까?


물론 중소상공인들의 낮은 결속력과 조직화 수준 등과 같은 수요 측면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급 측면에 있다. 정치인들이 중소상공인 정당의 탄생을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선거제도다. 지역주의와 결합된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중심의 현 선거제도 하에선 중소상공인들의 ‘정치적 유용성’이 별로 크지 않다. 오직 1등만이 의미가 있는 지역구 선거의 유권자들은 대체로 1등이 될 만한 후보에게만 투표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표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주의가 강력한 변수로 작동하는 한국의 선거정치에선 노동자들도 노동자 정당이 아닌 지역 정당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곤 한다. 중소상공인들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그러니 이러한 제도 조건하에서 누가 중소상공인 표의 결집을 기대하며 그들을 위한 정당 설립에 나서겠는가. 비례대표제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상공인들도 ‘지역 1등 뽑기 게임’에 말려 들어 그 귀중한 표를 낭비하지 않고 진정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에 표를 모아줄 수 있다. ‘사장님들’을 위한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정당은 그때에야 비로소 부상할 수 있다.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2.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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