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혁] 누가 '하우스 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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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9-24 13:47 조회23,1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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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고 하면 ‘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하였지만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정의는 다주택 소유 가구까지 포함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로 돈을 빌리는 것이 ‘무리’한 것이고 어느 정도로 사는 것이 ‘빈곤’한 것인지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하우스 푸어 문제를 부풀릴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하우스 푸어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하우스 푸어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해야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청의 2010 가계금융조사를 활용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우스 푸어를 ‘주택 한 채만을 보유하고 있고, 거주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고 있으며,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실제로 가계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10% 이상인 가구’로 정의할 경우 2010년 현재 하우스 푸어는 108만4000가구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총 1691만7000가구 중 주택보유가구는 1070만5000가구인데, 주택보유가구 중 10.1%가 이와 같은 하우스 푸어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의 가구 평균 재무구조를 보면 총 자산 3억1100만원 중 거주주택이 73.7%에 달하는 2억2900만원을 차지하고 있고, 부채는 8900만원, 순자산은 2억2200만원이다. 평균적으로 순자산이 거주주택의 가격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원이고 원리금 상환액은 102만3000원이라서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율이 무려 41.6%에 이른다. 원리금 상환능력을 조사한 결과 하우스 푸어 중 61.2%는 대출계약 기간 내 상환이 가능하지만 30.4%는 기간 연장시 상환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8.4%는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답하였다.
한편 하우스 푸어 108만4000가구를 소득 수준별로 나누어보면 1분위(하위 0~20%) 소속은 8만6000가구, 2분위(하위 20~40%)는 19만2000가구에 지나지 않아 저소득층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6%에 불과하다. 즉, 하우스 푸어의 대다수는 중상위 소득 계층인 것이다.
하우스 푸어 대책은 주택 매입과 대출에 대한 자기책임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되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고려하고, 유동성 문제와 건전성 문제를 구분하여 접근해야 한다. 주택 매입과 대출은 기본적으로 주택 보유자와 은행의 책임이므로 계약 조건 변경은 양자 간의 협의로 진행되어야 한다. 양자 간의 합의가 어렵고 주택담보대출의 대량 부실화로 인한 투매와 가격 폭락이 우려될 경우에는 정부 개입이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주택 보유자와 은행을 위해 납세자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하우스 푸어가 정부에 자신의 집을 매각한 후 그 집에 다시 임대로 살면서 몇 년 뒤 팔았던 가격에 다시 집을 사들이는 권리를 갖는 ‘매각 후 임대’ 방안은 재정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정부가 시가에서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주택을 매입한다고 해도 당장 수십조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향후 주택 가격이 크게 하락할 경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의 대다수는 중상위 소득 계층이고 원리금 상환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동성 문제가 있을 경우 원리금의 현재 가치는 유지하되 상환기간과 조건을 조정하면 된다.
어떻게 해도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주택 보유자가 본인의 잘못된 판단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고, 추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경우 이에 따르는 이익을 납세자들이 누릴 수 있도록 지분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하우스 푸어의 주택 전체가 아닌 지분의 일부만을 시가에서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매입한 후 이 지분에 상응하는 임대료를 받고 하우스 푸어에게 몇 년 뒤 이 할인된 가격을 상회하는 수준에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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