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北 김정은이 당장 구입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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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02 11:14 조회38,4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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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이 당장 구입해야 할 책!
[프레시안 books] 조성렬의 <뉴 한반도 비전>
정치의 계절에는, 정치와 정치학의 경계가 무너지곤 한다. 정치학이 정치가 되는 사태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학이 될 지는 미지수다. 조성렬의 <뉴 한반도 비전: 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백산서당 펴냄)은 정치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정치학 저서다. 어떤 세력이, 왜 <뉴 한반도 비전>을 살 것인가. 책을 읽고 나서 던지는 첫 질문이다.
외교 정책과 특수한 외교 정책인 대북 정책은 국내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뉴 한반도 비전>의 답은 당파적이지 않다. 저자는 "보수-진보의 기존 대립 구도를 뛰어넘어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초당파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 통일에 유리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프롤로그에는 보다 비장한 표현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관계의 변화에 올바로 대응한다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지금-여기서 다시금 '민족'과 '통일'을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 단어는 2013년 새 정부를 책임지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주고 싶은 핵심어일 게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주체의 호명이 한반도의 미래에 긍정적인가, 그리고 가능한 정치적 기획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통일은 남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개념"이라는 주장도 너무나 단순한 통일 당위론이다. "북한 체제 조기 붕괴론에 연동된 통일 논의는 자칫 우리의 대외 전략과 대북 정책을 오도할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통일론이 재 거론된 배경이나 의도야 어떻든, 한민족의 통일은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과제"라는 언급은, 자칫 모든 통일을 선으로 간주하는 주장과 맞닿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내세우는 화해·상생 통일론은, 점진적 통일, 평화적 통일, 민족 공동체의 형성을 우선한다는 기존의 통일 방안에, 북한 체제 급변에 따른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편입 통일"을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뉴 한반도 비전>의 백미가 평화 통일 전략의 첫 단계로 설정한, "미·중의 동의를 얻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실증 분석과 전략 구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뉴 한반도 비전>이 던지고 있는 "강대국 간 세력 균형과 군사정전 체제에 따른 잠정적인 안정을 평화로 착각하"게끔 하는 인식과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라는 질문은 정치학적 연구를 현실 정치의 의제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의제는, 한반도 정전 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평화체제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단속적이지만 줄곧 논의되어 왔던 의제다. 탈 냉전 시대에 개최된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뉴 한반도 비전>이 다시금 평화체제를 "당면 과제"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세력 균형 정책의 산물인 북한 핵 문제 때문이다. 정전 체제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 미국이 남한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나 남한 내 핵무기의 재배치로 맞서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군사적 균형"이지 "한반도 비핵화라는 진정한 의미의 북핵 문제 해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쟁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이 '평화체제가 실현된다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논리를 제기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연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6자회담의 결과인 9.19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나란히 언급되었다.
<뉴 한반도 비전>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3대 조건"은, 서해상의 해상 군사 분계선 획정 문제, 외국 군대와 관련된 문제 등을 포함하는 "군사 정전협정 종료 및 평화협정 체결",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재발 방지", 북미, 북일 수교를 포함한 "평화적 안보 환경의 조성" 등이다.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에서, '평화협정의 당사자', '평화협정의 내용', '주한미군 및 유엔군 사령부'는 해결이 어려운 쟁점들이었다. 특히 북한은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한미동맹의 해체와 교환하고자 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이 주장에 대해 평화체제와 한미동맹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곤 했다.
<뉴 한반도 비전>은 쟁점의 성격상 행위자들의 근본적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타협에 이르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하여, 그 과정을 단계로 나누는 방식을 모색한다. 첫째, '잠정협정'으로서의 "남북관계 기본협정"이다. 이 협정은, 해상 군사 분계선이나 유엔군 사령부와 같은 쟁점과 핵 문제 등을 우회하면서 평화과정에 진입하기 위한 것으로, "민족 자결권 확보를 위해 남북한을 당사자로 하는 평화공존의 법제도화"와 "북한의 핵 폐기"와 이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 안전보장 조치"가 담긴다. 이 잠정협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규범화"한다.
둘째, "선불제" 방식의 "경제-안보 교환"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후불제" 방식의 "경제-안보 교환"인 이명박 정부의 강압 정책이 핵문제 해결을 이루지 못했다는 반성을 기반으로, "안보-안보 교환"을 축으로 하는 단계별 평화체제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제1국면"은 "남북 신뢰관계의 재구축"이고, "제2국면"은 재래식 무기 분야의 군비 통제와 북미, 북일 관계 개선 등이 담긴 "낮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과 남북관계 기본협정"이다. 제3국면은, 한반도 비핵화 등 군비 통제의 이행,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높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과 한반도 평화협정"이다.
세력균형 정책을 우회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는 "안보-안보 교환 접근법"은 <뉴 한반도 비전>이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의 핵 포기와 중국의 대북 안전 보장의 교환, 북한의 핵 포기와 한미동맹의 교환, 북한의 핵 포기와 포괄적 안전 보장의 교환 등 세 가지 방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세 교환의 장단점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한 후, <뉴 한반도 비전>은 9·19 공동성명에 그 골간이 담겨 있는 세 번째 방식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경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은 언제라도 먹힐 수 있는 전지전능의 해법"이 아니라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정책 대안이다.
<뉴 한반도 비전>의 평화체제 구축 방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남북관계의 주동적 역할에 대한 강조다. 불가역적일 것 같던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의 강압적 대북 정책과 남북관계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북중 관계의 복원으로 단절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보며,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뒷받침할 법규범"의 구성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북중 관계가 경제 협력에서 군사 협력으로까지 확장될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력이 증대할 것이고, 이는 "민족의 이익과 상반"된다는 인식의 소산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 "경제적으로 남북 경제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는 안보적 조건이자 정치적으로 남북연합의 토대가 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가능한 대북 정책의 구상에서도 남북관계 중심론이 현저하다. <뉴 한반도 비전>은 한반도 문제 접근법과 한반도 문제 주도권이라는 두 변수를 이용하여 대북 정책의 네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서평자가 도식화하면 '표 1'과 같다. <뉴 한반도 비전>의 선호는, 화해·상생 프로세스, 일명 "왕건 정책"이다. "왕건 정책"의 3대 원칙으로는, "상호 체제의 인정과 존중", "상호 조율된 안보조치", "민족자결에 기초한 국제협력"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원칙과 관련하여,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한민족의 주도권, 즉 민족자결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민족 배타주의 때문이 아니라 동북아 신질서로의 재편이 지역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민족분단의 항구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부연이 붙어 있다. 동북아가 강대국의 세력균형으로 갈지라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은 있어야 한다는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표 1'이 경쟁하는 정책 대안을 포괄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5년차에 진행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강화는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군사 협력도 한미동맹에 추가되고 있다. 즉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에서는 '한미동맹 우선론', 한반도 문제의 접근법에서는 교환보다는 봉쇄를 지향하는 정책 대안이 작동하고 있다. 사실 화해·상생 프로세스의 대척에는 동북아 봉쇄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전략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도 있다.
즉 <뉴 한반도 비전>에서 정치적 쟁투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국판 햇볕정책이 동북아 봉쇄 전략과 등치될 수도 없다. 북중 협력이 "민족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비판 받을 이유도 없다. 이 한계는, 한국의 외교안보 독트린을 기초로 대북 정책을 설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의 필연적 선택일 수밖에 없는 '균형외교'는 동북아 지역 정책을 필요로 하고 이 선택들이 대북 정책의 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 없이 실현되기 어렵다.
남북관계 중심론을 전개할 때,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도 화해·상생 프로세스에서 모호하다. 북한은 대중종속을 우려하지만, 대남종속도 우려한다. 북한의 대미 정책에는 이 우려도 담겨 있다. 민족을 호명하여 이 우려를 불식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이미 '김일성민족'론으로 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하고 통일을 '열린' 대안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한도 <뉴 한반도 비전>을 구매해야 하는 고객이다.
글을 정리하며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뉴 한반도 비전>을 누가 살 것인가. 구매자가 정치적 다수를 획득하여 <뉴 한반도 비전>을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뉴 한반도 비전>의 정치적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과 통일의 불러오기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지, 또는 정치적 소수로서 다수의 담론과 정책의 지형을 이동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족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로 쓴 적이 있다는 것을 증거로 북한의 연방제가 연합제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6.15 공동선언 2항의 내용, 즉 연합과 연방의 공통성을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도 활용된다. <뉴 한반도 비전>도 "북한은 용어상으로 '연방제'라고 말하면서도 영문상으로는 연합제(confederation)로 표기하고 있다"고 다른 글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조영 대사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고려연방제를 Democratic 'Federal' Republic of Koryo로 표기하고 있다. 북한이 연방제를 의도적으로 confederation으로 썼다는 것은 과잉해석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나타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보다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프레시안, 2012.6. 29.)
[프레시안 books] 조성렬의 <뉴 한반도 비전>
정치의 계절에는, 정치와 정치학의 경계가 무너지곤 한다. 정치학이 정치가 되는 사태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학이 될 지는 미지수다. 조성렬의 <뉴 한반도 비전: 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백산서당 펴냄)은 정치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정치학 저서다. 어떤 세력이, 왜 <뉴 한반도 비전>을 살 것인가. 책을 읽고 나서 던지는 첫 질문이다.
외교 정책과 특수한 외교 정책인 대북 정책은 국내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뉴 한반도 비전>의 답은 당파적이지 않다. 저자는 "보수-진보의 기존 대립 구도를 뛰어넘어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초당파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 통일에 유리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프롤로그에는 보다 비장한 표현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관계의 변화에 올바로 대응한다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지금-여기서 다시금 '민족'과 '통일'을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 단어는 2013년 새 정부를 책임지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주고 싶은 핵심어일 게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주체의 호명이 한반도의 미래에 긍정적인가, 그리고 가능한 정치적 기획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통일은 남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개념"이라는 주장도 너무나 단순한 통일 당위론이다. "북한 체제 조기 붕괴론에 연동된 통일 논의는 자칫 우리의 대외 전략과 대북 정책을 오도할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통일론이 재 거론된 배경이나 의도야 어떻든, 한민족의 통일은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과제"라는 언급은, 자칫 모든 통일을 선으로 간주하는 주장과 맞닿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내세우는 화해·상생 통일론은, 점진적 통일, 평화적 통일, 민족 공동체의 형성을 우선한다는 기존의 통일 방안에, 북한 체제 급변에 따른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편입 통일"을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 <뉴 한반도 비전>(조성렬 지음, 백산서당 펴냄). ⓒ백산서당 |
평화체제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단속적이지만 줄곧 논의되어 왔던 의제다. 탈 냉전 시대에 개최된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뉴 한반도 비전>이 다시금 평화체제를 "당면 과제"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세력 균형 정책의 산물인 북한 핵 문제 때문이다. 정전 체제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 미국이 남한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나 남한 내 핵무기의 재배치로 맞서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군사적 균형"이지 "한반도 비핵화라는 진정한 의미의 북핵 문제 해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쟁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이 '평화체제가 실현된다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논리를 제기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연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6자회담의 결과인 9.19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나란히 언급되었다.
<뉴 한반도 비전>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3대 조건"은, 서해상의 해상 군사 분계선 획정 문제, 외국 군대와 관련된 문제 등을 포함하는 "군사 정전협정 종료 및 평화협정 체결",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재발 방지", 북미, 북일 수교를 포함한 "평화적 안보 환경의 조성" 등이다.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에서, '평화협정의 당사자', '평화협정의 내용', '주한미군 및 유엔군 사령부'는 해결이 어려운 쟁점들이었다. 특히 북한은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한미동맹의 해체와 교환하고자 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이 주장에 대해 평화체제와 한미동맹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곤 했다.
<뉴 한반도 비전>은 쟁점의 성격상 행위자들의 근본적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타협에 이르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하여, 그 과정을 단계로 나누는 방식을 모색한다. 첫째, '잠정협정'으로서의 "남북관계 기본협정"이다. 이 협정은, 해상 군사 분계선이나 유엔군 사령부와 같은 쟁점과 핵 문제 등을 우회하면서 평화과정에 진입하기 위한 것으로, "민족 자결권 확보를 위해 남북한을 당사자로 하는 평화공존의 법제도화"와 "북한의 핵 폐기"와 이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 안전보장 조치"가 담긴다. 이 잠정협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규범화"한다.
둘째, "선불제" 방식의 "경제-안보 교환"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후불제" 방식의 "경제-안보 교환"인 이명박 정부의 강압 정책이 핵문제 해결을 이루지 못했다는 반성을 기반으로, "안보-안보 교환"을 축으로 하는 단계별 평화체제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제1국면"은 "남북 신뢰관계의 재구축"이고, "제2국면"은 재래식 무기 분야의 군비 통제와 북미, 북일 관계 개선 등이 담긴 "낮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과 남북관계 기본협정"이다. 제3국면은, 한반도 비핵화 등 군비 통제의 이행,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높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과 한반도 평화협정"이다.
세력균형 정책을 우회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는 "안보-안보 교환 접근법"은 <뉴 한반도 비전>이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의 핵 포기와 중국의 대북 안전 보장의 교환, 북한의 핵 포기와 한미동맹의 교환, 북한의 핵 포기와 포괄적 안전 보장의 교환 등 세 가지 방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세 교환의 장단점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한 후, <뉴 한반도 비전>은 9·19 공동성명에 그 골간이 담겨 있는 세 번째 방식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경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은 언제라도 먹힐 수 있는 전지전능의 해법"이 아니라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정책 대안이다.
<뉴 한반도 비전>의 평화체제 구축 방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남북관계의 주동적 역할에 대한 강조다. 불가역적일 것 같던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의 강압적 대북 정책과 남북관계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북중 관계의 복원으로 단절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보며,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뒷받침할 법규범"의 구성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북중 관계가 경제 협력에서 군사 협력으로까지 확장될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력이 증대할 것이고, 이는 "민족의 이익과 상반"된다는 인식의 소산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 "경제적으로 남북 경제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는 안보적 조건이자 정치적으로 남북연합의 토대가 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가능한 대북 정책의 구상에서도 남북관계 중심론이 현저하다. <뉴 한반도 비전>은 한반도 문제 접근법과 한반도 문제 주도권이라는 두 변수를 이용하여 대북 정책의 네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서평자가 도식화하면 '표 1'과 같다. <뉴 한반도 비전>의 선호는, 화해·상생 프로세스, 일명 "왕건 정책"이다. "왕건 정책"의 3대 원칙으로는, "상호 체제의 인정과 존중", "상호 조율된 안보조치", "민족자결에 기초한 국제협력"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원칙과 관련하여,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한민족의 주도권, 즉 민족자결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민족 배타주의 때문이 아니라 동북아 신질서로의 재편이 지역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민족분단의 항구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부연이 붙어 있다. 동북아가 강대국의 세력균형으로 갈지라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은 있어야 한다는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 표1. ⓒ구갑우 |
그러나 '표 1'이 경쟁하는 정책 대안을 포괄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5년차에 진행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강화는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군사 협력도 한미동맹에 추가되고 있다. 즉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에서는 '한미동맹 우선론', 한반도 문제의 접근법에서는 교환보다는 봉쇄를 지향하는 정책 대안이 작동하고 있다. 사실 화해·상생 프로세스의 대척에는 동북아 봉쇄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전략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도 있다.
즉 <뉴 한반도 비전>에서 정치적 쟁투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국판 햇볕정책이 동북아 봉쇄 전략과 등치될 수도 없다. 북중 협력이 "민족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비판 받을 이유도 없다. 이 한계는, 한국의 외교안보 독트린을 기초로 대북 정책을 설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의 필연적 선택일 수밖에 없는 '균형외교'는 동북아 지역 정책을 필요로 하고 이 선택들이 대북 정책의 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 없이 실현되기 어렵다.
남북관계 중심론을 전개할 때,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도 화해·상생 프로세스에서 모호하다. 북한은 대중종속을 우려하지만, 대남종속도 우려한다. 북한의 대미 정책에는 이 우려도 담겨 있다. 민족을 호명하여 이 우려를 불식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이미 '김일성민족'론으로 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하고 통일을 '열린' 대안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한도 <뉴 한반도 비전>을 구매해야 하는 고객이다.
글을 정리하며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뉴 한반도 비전>을 누가 살 것인가. 구매자가 정치적 다수를 획득하여 <뉴 한반도 비전>을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뉴 한반도 비전>의 정치적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과 통일의 불러오기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지, 또는 정치적 소수로서 다수의 담론과 정책의 지형을 이동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족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로 쓴 적이 있다는 것을 증거로 북한의 연방제가 연합제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6.15 공동선언 2항의 내용, 즉 연합과 연방의 공통성을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도 활용된다. <뉴 한반도 비전>도 "북한은 용어상으로 '연방제'라고 말하면서도 영문상으로는 연합제(confederation)로 표기하고 있다"고 다른 글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조영 대사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고려연방제를 Democratic 'Federal' Republic of Koryo로 표기하고 있다. 북한이 연방제를 의도적으로 confederation으로 썼다는 것은 과잉해석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나타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보다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프레시안, 2012.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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