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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혁] 유로존 위기의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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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09 14:32 조회24,9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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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의 악용



지난 몇 달 동안 일부 정책담당자와 언론은 복지 논쟁을 잠재우고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유로존 위기를 활용해 왔다. 마치 과도한 복지 지출과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인해 유로존 위기가 촉발된 것처럼 진단하고,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식으로 유로존 위기의 파급효과를 부풀렸다.


지난 칼럼(6월7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유로존 위기는 불완전한 통화연합에 따른 불균형과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과도한 복지 지출과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 아니다. 2007년 기준 GDP 대비 사회 지출 비율을 살펴보면, 이탈리아가 25%, 포르투갈이 23%, 스페인과 그리스가 각각 22%, 아일랜드가 17%였다. 복지가 발달된 북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GDP 대비 사회 지출 비율이 각각 28%와 25%를 기록한 프랑스와 독일에 비해서도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유로화가 출범한 1999년부터 2007년까지의 GDP 대비 재정적자 평균을 보면, 재정통계를 조작해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만 5%를 넘었을 뿐이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오히려 재정흑자를 기록할 정도였다. 실제로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07년 당시 각각 25%와 36%에 불과했으나, 자산가격 폭락에 따른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크게 늘어나 2011년 105%와 68%에 이르게 되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부동산 부문의 거품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로존 위기의 파급효과도 금융과 무역 경로로 나눠 침착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금융 경로를 보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계 기관이 유로존에서 손실을 봤을 때 이를 보전하기 위해 한국에서 얼마나 자본을 환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유로존 채권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2011년 말 현재 한국에 투자한 총액은 1546억달러로서, 이는 6개월 전에 비해 327억달러 줄어든 금액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같은 기간 동안 오히려 20억달러 가까이 늘어나 3064억달러를 기록했다. 즉, 유럽계 은행들에 의한 자본 환수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외환 상황은 개선된 것이다. 2012년 3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전체 단기외채의 2.3배로, 유사시 외환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역 경로를 통한 유로존 위기의 파급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유로존 17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남짓이고 유럽연합(EU) 27개국으로 계산을 확대해도 10%에 불과하다. 최근 KDI는 유로존 위기로 인해 EU의 2012년과 2013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에서 1%포인트 감소한 마이너스 1.3%와 마이너스 0.1%를 기록하여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1%포인트 미만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한 상품이 가공되어 EU에 다시 수출되는 간접 효과 등을 감안해도 유로존 위기의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유로존 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전망은 사실관계를 왜곡할 뿐 아니라 건설적인 정책논의를 방해하고 경제주체의 심리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켜 왔다. GDP 대비 사회 지출이 10% 수준에 불과하고 주요 사회복지 지표에서도 OECD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에 초점을 맞춘 정책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또한 1997년과 2008년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에 대한 자기책임 원칙을 확립하고 금융감독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와 같이 중요한 정책과제들을 놔두고 유로존 위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유로존은 지난 6월29일 중장기적으로 금융 연합과 재정 연합을 지향하면서, 유럽안정기제(ESM)를 통해 개혁 프로그램의 이행을 조건으로 은행자본 확충과 국채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내용의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유로존 위기 해결의 가닥이 잡힌 만큼 이제는 우리도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임원혁  KDI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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