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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공감할 줄 아는 시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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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09 15:26 조회23,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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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할 줄 아는 시민, 여성

미국 메릴린치 부사장을 지내다 자신의 고향, 일본 시마네현의 작은 도시 이즈모시의 시장이 된 이와쿠니씨가 약 20년 전에 서울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중앙에 대한 콤플렉스를 불식하고 지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자는 그의 강의는 당시 우리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신기하게 보였다. 그런데 더욱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의 강의 철학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청중의 반이 여성이 아니면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들어도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강의실을 벗어나면 그만인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은 표정과 추임새로 강사와 대화할 줄 알고 좋은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전달하는 소통의 달인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동의 폭과 깊이가 울림을 더해 이웃에게 전달될 때 그 메시지는 실천적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공감과 소통 능력을 강조했던 것이 그의 강의 철학이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두 가지 사실을 더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실제로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공감을 할 줄 아는 시민들’이 존재하는 가이다.

19대 국회가 개원을 하고 대선주자들이 연이어 출마를 선언하면서 2012년 대선의 포문이 열렸지만, 우리는 메시지를 찾기 힘들다. 누구에게도 공감하기 어렵다. 게다가 출마한 이들은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선거의 규칙을 바꾸자고 야단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는가에 온통 관심과 힘을 쏟아붓고 있다. 심지어 당내에 인물이 없으면 외부에서 영입해오자는 주장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실 정치의 핵심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리더십, 그리고 여기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이 있는가에 있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현실은 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변화의 힘은 대통령, 곧 국가권력을 바꾸는 것에 있다는 믿음이 지나치게 강화된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제시한 ‘2013년 체제’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밑그림을 장기적으로 그려내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체제의 필요성을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2013년 체제를 위한 노력이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비전과 정책의 합의 과정보다는 인물 선택의 선거 논리에 치우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뒤집어 생각하면 대선 후보들은 일단 당선되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 만큼 위험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대통령의 임기가 5년 단임제인 현재의 1987년 헌법체제하에서, 대선에만 매달리는 정치는 누군가에게는 천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5년이 되는 반쪽의 정치를 반복할 따름일 것이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함부로 뒤집을 수 없는 민주적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권력이 납득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설득하는 시민들의 정치는 여성들의 정직하고 투명한 대화와 공감의 생활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이기호 한신대 교수·평화와공공성센터 소장
(여성신문, 2012.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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