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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김종인 선대위와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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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11 11:14 조회23,6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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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선대위와 경제민주화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특히 대선은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 전체가 나라의 비전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야권은 대선 의제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총선 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지리멸렬·환멸의 정치이거나 이벤트의 정치이다. 정책 의제로 나온 것은 민주통합당이 검토를 언급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방안 정도다. 그런데 이마저도 논란과 다툼의 여지가 많다. ‘국립’이 꼭 공공성을 제고하는 것인지, 이것이 분권화의 흐름과 부합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야권이 지지부진한 동안 새누리당은 의제를 선점하면서 한발 더 나아갔다. 당내 유력 후보인 박근혜 후보는 경선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책위원회의 좌장역할을 맡게됐다는 점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전면 부상으로 새누리당은 국가비전과 민생정책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축했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의 핵심의제가 될 ‘경제민주화’에 대해 여권 내부에 논쟁의 축이 설정됐다는 점은 그 의미가 자못 깊고 넓다.


새누리당에서는 계속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담론 및 정치투쟁이 이어질 것이다. 당내의 기존 세력들은 경제민주화가 정통 경제학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고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 문제가 경제학 교과서에 수록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한국과 동아시아에는 영미 주류 경제학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이루어온 동아시아 각국에서 공히 경제민주화는 매우 중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기적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던 것, 그리고 그 경제발전이 이제 한계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모두 국가의 역할과 관련돼 있다. 동아시아의 국가는 적극적으로 산업과 기업을 만들어냈고 그 성과를 다수가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력의 확대와 집중은 경제생태계를 교란하고 경제발전을 제약하는 조건을 만들어냈다. 발전의 원동력이 다시 위기의 시스템적 원인으로 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교과서적인 동아시아 모델을 제공한 곳이다. 국가의 관료조직이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권과 협의해 예산과 법률을 제공해 특정 산업·기업을 지원했다. 일본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후에도 관료·정치인·기업인이 끈끈하게 조직화된 일본 모델을 혁신하지 못했다. 관료와 정치인은 국민의 복지보다는 기업의 이익에 관심을 쏟았고, 국민들은 무기력해졌다. 일본이 모험과 창의성을 발휘할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분배는 대만, 한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 모델의 위기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원전사고를 맞이해 도쿄전력은 원자로 가열을 막기위해 바닷물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했고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기까지 했다. 경제산업성은 이에 동조 또는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8월 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관료제 개혁의 의지를 과시했으나 이를 실행할 방책은 모자랐다.


동아시아 모델의 또 하나의 우등생은 대만이다. 대만은 민주화 이전 국유기업의 비중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민간기업의 발전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국민당이 국가·당영기업·국영기업을 지배하면서 민간기업과 지방엘리트를 통제하는 한편, 삼민주의 이념하에 비교적 평등한 분배를 관철시켰다. 민간기업은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적응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그러나 2000년 사상 최초로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대만경제는 성장의 정체와 경제력 집중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대만은 1990년 이전 매년 9% 성장했으나 이후 성장률이 둔화됐다. 민진당은 민영화를 적극 추진했고, 민간기업과 지방엘리트의 영향력이 증대했다. 이때 공영사업과 정부투자가 크게 감소했다. 대만의 민주화는 의도하지 않게 경제적 독점을 가속화하고 분배가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강력한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펴 왔다. 국가의 지원속에서 소수 재벌들은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글로벌화 속에서 재벌 대기업과 여타 부문·지역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동아시아 모델은 세계은행이 논의한 대로 급속한 경제성장과 불평등도의 저하라는 두 가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성된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위계적인 제도형태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간관계, 정부·기업관계, 중앙·지방관계를 수평화·분권화해야 한다.


올해 한국 대선에서 여야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혁신을 놓고 역사적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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