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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연동하는 동아시아, 악순환인가 선순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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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27 11:59 조회34,6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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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아침 산책하러 문을 나서다 맞은편 집 문앞에 놓인 『조선일보』1면 머릿기사를 보고 놀랐다. “한중일 ‘신냉전시대’: 8·15 연쇄충돌”. 아니, 신냉전시대라니? 뭔 소리인가 하고 나중에 다른 신문을 들춰보니 독도와 센까꾸열도(尖閣列島, 중국명 釣魚島 대만명 釣魚台)를 둘러싼 관련국들간의 연동하는 영토분쟁을 두고 그렇게 제목을 단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주도하던 미국 패권이 쇠퇴하는 동시에 중국이 부상하는 세력 전이로 인해 지역질서가 불안정해지면서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이 구조적 변화 속에서 작은 불씨가 발생하면 각국간 이해관계는 곧 뜨겁게 충돌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는 한다. 특히 한반도의 긴장이 그 빌미를 제공하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함과 동시에 북중관계를 긴밀하게 만듦으로써 지역 내 갈등은 더욱 격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국가들 간의 긴장을 이념과 가치관의 대립, 곧 ‘신냉전’으로 몰고가려는 사회세력들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도 (적어도 경제면에서라도) 중국과 상호의존을 더해가고 있는 구조에서 예전 같은 진영간 대립상태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우므로 ‘신냉전’이 도래할 근거는 약하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에서 다양한 수준의 상호의존·협력이 깊고 넓게 진행되고 있음도 쉽게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8·15를 전후한 영토분쟁을 다시 보면, 낡은 문제와 새로운 문제가 동시에 드러난다. 낡은 문제란 중국의 대두 이후 지역의 불안정성에 적응하는 방식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문제는 올해 관련 국가들의 러더쉽이 바뀌는 시기가 겹치면서 국내용으로 대중의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한층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신냉전’과 상반되는 한일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그 점은 한국의 경우 아주 두드러져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출발 초기에 “과거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발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고, 한일 두 정부의 합의 아래 진행되던 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활동조차 중지되었다. 바로 얼마 전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실에서 처리하려고까지 했다. 그렇게 역사문제 해결은 소홀히 한 채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추구하던 대통령이 8월 11일 갑자기 독도를 방문하고 나섰다. 이어 이 대통령은 일왕에게 과거사에 대한 직접사과를 요구하는 등 한걸음 더 나아갔다. 대일정책의 일관성 결여는 접어두더라도 관련 부처와 충분한 토의나 거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행태는 대통령의 외교능력의 파탄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일왕에 대한 언급은 사려깊지 못했다. 일왕이 일본 문화와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숙지하고서 일왕에 대한 요구의 수위를 조절해야 역효과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서한을 보냈고, 그것을 한국 정부가 반송하는 외교관례상 드믄 사태마저 발생했다.

이렇게 잇따라 한국에 대한 초강경책을 쏟아내던 중, 24일 일본 국회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 사과’ 발언에 항의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이러한 일본의 대응방식도 적절치 못하긴 매한가지이다. 일왕에 대한 일본인의 특이한 집단감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왕 발언을 핑계로 내각과 일본 전체가 지금처럼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여기서 일본 근현대사에서의 희생자 오끼나와인의 발언을 우리 모두 새겨들어야 한다. “영토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외교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니 관련 국가들의 자제와 더불어 “일본 국내에서도 편협한 배외주의적 분위기가 강화되는 데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琉球新報』, 8월 15일자 사설)

그간 한국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의 촉진자로서 그 나름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현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대북·대외정책, 특히 이번 8월의 행보는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한반도에서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는데, 그 주체인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만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지 않은 것(『한겨레신문』, 8월 17일자)이라면 차라리 문제는 덜 심각할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영토분쟁의 도화선이 된 ‘띠아오위타이(釣魚台) 지키기운동(保釣運動)’이 대만 민주화운동의 토대가 된 과정을 되새겨본다. 1971년 초 미국의 대만 출신 유학생들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띠아오위타이 지키기운동’을 벌였고, 그 영향을 받아 대만대학 학생들도 시위를 감행했다. 그후 이 운동이 대만 전역에 확산되었는데 여기에 참여한 지식청년들은 그 과정에서 비판적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에 눈 떴다. 당시는 쟝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정권이 냉전질서를 빌미로 백색공포의 통치를 펼치던 엄혹한 시대임을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이에 대해서는 졸고, 「조어대를 아시나요?」 『서남통신』, 2011.10.10)

이 사례는 영토분쟁이 민주화를 촉발시킨 경우인데, 현재의 동아시아 영토분쟁 상황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역으로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저해할 위험이 큰 편이다. 그만큼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방략이 절실해진다.

사실, 지금 MB정부의 ‘외교실패’를 비판하기는 쉽다.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 캠프의 최경환 총괄본부장조차 ‘일종의 (대일)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을 정도 아닌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차기 대통령의 정책관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대세’라는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대통령의 최근 외교행보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독도는 우리 영토란 원칙론만 내세운 점은 매우 안타깝다. 이와 동시에 야권의 유력한 경선 후보들의 외교·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매섭게 추궁하고 싶다. 연동하는 동아시아를 선순환시킬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면한 영토분쟁이 극명하게 일깨워주듯이, 우리가 그간 추구해온 평화와 화해의 동아시아를 실현하려면, 이 지역을 구성하는 국가 안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의 내부개혁 과정이 국가 간 화해 내지 통합 과정과 단단히 결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 민주당정부나 한국 이명박정부나 모두 내부 개혁에 실패하고 있는 형편이니 그로부터 동아시아의 선순환에 한몫 하기를 기대하기란 무리 아닌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토분쟁이 편협한 민족주의를 부채질하여 평화의 동아시아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이 지역의 전략적 지성을 널리 결집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동시에 해당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방향으로의 내부개혁을 추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곧 결실의 계절로 들어가면서 대선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를 것이다. 연동하는 동아시아가 선순환할 것인지, 악순환할 것인지 선택은 그 과정에서 이뤄질 터이다. 12월 19일 대선의 그날까지 매일 매일 엄정한 투표를 치르듯 온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그것은 영토분쟁을 넘어 한국의 민주주의와 동아시아 평화를 동시에 지키는 한국인이자 동아시아인인 우리의 의무요 보람이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서남포럼, 201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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