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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두 가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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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9-10 12:47 조회25,2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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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산-서울을 오가는 처지여서 기차표 예매를 위해 코레일 안내원과 매주 한 번은 통화하게 된다. 그들의 첫마디는 이렇다. "행복을 드리는 ○○○입니다." 규칙에 따른 것일 테니 그들 개개인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간혹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그리고 왜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거지? 본 적도 볼 일도 없는 나를?'

좋은 말들이 너무 많다. 편의점의 아름다운 여종업원도 느닷없이 '사랑합니다(고객님)'라고 고백하고, 대중매체의 광고들에선 금방이라도 달려와 온갖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줄 듯 다정한 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까. 잠깐 다른 이야기를 경유해 보자.


위생이 병을 낳고 안전이 위험을 낳는다


지난 5월 전남의 한 중학교 학생 30여 명이 잊힌 전염병인 백일해에 감염되었다. 이 같은 집단 감염은 거의 40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올해 들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도 백일해 비상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백일해와 함께 A형 간염과 말라리아 같은 옛 전염병들도 되돌아오고 있다.

한 의대 교수는 이것을 '전염병의 역설'이라고 불렀다.(중앙일보, 2012. 5. 29.) 다름 아닌 위생적 생활환경이 이들의 귀환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충분히 위생적이지 않은 생활환경에서는 적당히 세균에 노출돼 전염병에 살짝 걸린 뒤 면역이 생겨 넘어갔지만, 오늘의 위생적 환경은 그럴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적은 균이 생겨도 쉽게 감염된다는 것이다.


'안전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에서 수년 전 '안전의 안전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한 정신의학자가 '컬 환자 이론'이라는 것을 발표한 이후에 제기된 것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이론의 요지는 이러하다.


"'컬 환자 이론'은 빙판 위에서 선수들이 목표지점까지 무거운 돌을 보내기 위해 빙판을 맹렬히 빗질해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는 겨울철 스포츠 '컬링'에서 따온 것이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컬링 경기와 비슷하게 자식들을 위해 장애물을 모조리 제거해 줌으로써 곤경과 위험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라는 중요한 통찰력을 오히려 빼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한겨레, 2006. 1. 25.)

위생이 병을 낳고, 안전이 위험을 낳는다는 이 역설들의 요점은 간단하다. 병과 위험은 신체와 삶에 내재적이어서 그것의 예방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철저한 위생과 안전은 환상이다. 이것은 과도한 단언이 아니다.

위생의 목표는 세균이라 불리는 미생물의 박멸이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는 미생물 없이 생존 불가능하며, 현대 과학은 전체 미생물의 1%도 밝히지 못했다. 우리는 입안의 세균을 없애느라 매일 애쓰지만, 입 안의 미생물이 완전히 사라질 때 우리의 구강에 어떤 재앙이 닥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구조의 면에서 신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삶에서 안전과 위험의 문제는 보다 더 불확실하고 복합적인 영역에 속한다. 8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지난 2010년 자살한 1만 5천566명이 결국 극복할 수 없었던 곤경과 위험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너무 적다.


프로이트는 인간에 내재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초자아, 죽음 충동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이 극단적인 비관론에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과 행복을 제도가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
을 것이다.



아름다운 약속 언어 아닌 누추한 정직의 언어를


문제는 정치와 자본의 언어가 해결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두 언어는 철도 안내원의 첫마디와 같은 광고의 언어로 단일화되었다. 그 언어들은 자신의 장점을 과장되게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말투로 건강과 행복의 약속을 속삭인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차라리 병과 위험의 물리적 현존이 아니라, 그것의 해결을 약속하는 말들이다. 그 말들이야말로 박멸해야 할 병균이다. 자본의 언어는 교정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에는 약간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최근 인터뷰에서 유시민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음 5년은… 더 큰 행복과 더 많은 부를 고루 나눠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감내할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주간경향, 2012. 9. 11.) 이런 말들을 듣고 싶다.


허문영 영화평론가
(부산일보, 201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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