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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벼락'을 부르는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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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5:37 조회20,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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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벼락’을 부르는 한-미 FTA

 

이일영 /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선언 이후 어디서든 ‘왜?’가 화제다. 당혹·실망·분노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가는 것 같다. 추측은 크게 둘로 나뉜다. 현정권의 본래 실력과 속성이 드디어 드러난 것이라는 ‘연속설’이 있고, 어느 시점에선가 돌연히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변이설’이 하나다.

 

오리무중 속에 드러나는 진실도 있다. 이런저런 논의로, 한-미 협상은 한-칠레, 한-일 협상에 비해서도 준비 정도가 형편없는 상태라는 점은 확연해졌다. 잘 준비했노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이들도 있지만, 핵심부에서는 준비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종의 쇼크요법”이라고 언급했다. 준비가 부족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재 수준이고, 그 수준은 금방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벼락치기’가 불가피하고 외부 충격을 통해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그 뜻을 짐작해본다.

 

상식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이런 급진주의적 사고나 추진방식은 이론적·경험적으로 족보를 가지고 있다. 급진주의 또는 쇼크요법은 자유방임을 통해 구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한걸음에 건너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경제관에 입각해 있다. 충격요법을 지지하는 이들은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데 반대하는 역사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시스템이 무너진 옛소련이나 동유럽의 체제이행 과정에서 이론적·정책적 자원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에서는 체제이행의 패턴을 충격요법과 점진주의로 양분하는 것이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우선 충격요법의 효과가 그리 마술적이지 못했다. 러시아의 경우 충격 이후 맞은 결과는 생산의 위축과 경제적 불안정이었다. 이것이 너무나 고통스런 과정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단순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는 급진적 가격 조정 직후 1992년 한 해에만 국내총생산이 14.5% 줄고 소비자물가는 2500%나 상승했다. 고난은 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코르나이 같은 경제학자는 ‘외과수술’을 단숨에 또한 동시에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런 사태를 본 후 전환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불황이 발생한다고 견해를 바꾸었다.

 

게다가 충격요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실행된 사례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가장 급진적이었던 러시아에서조차 그렇다. 외부 충격에 따라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도처에서 종래의 제도와 관행이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표면에서 국유기업이 민영화되었지만, 가격 설정, 원료 조달 등 구체적인 경영 내용이 뒤따르지 않았다. 농업에서는 개혁이 더욱 어려워서, 많은 농민들이 농지 사유화를 거부하고 과거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성장이나 양극화, 이런 특정한 경제문제를 두고 마치 그럴듯한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약도 그 사회의 생명력과 회복력에 따라 잘 듣기도 하고 안 듣기도 한다. 역사는 경제정책 역시 각 나라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킨들버거) 그리고 ‘벼락’은 제우스 같은 신들의 무기이지 인간이 함부로 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과 역사에 무지한 모험주의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벼락’을 불러 국론 분열과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한겨레, 200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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