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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이산 정조의 죽음과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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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1-04 15:02 조회26,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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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칼럼]이산 정조의 죽음과 그 후

 

이산은 정조의 이름이다. 요즘 드라마를 통해 이 이름이 강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머리에 꽂히고 있다. 정조는 노론을 등에 업고 정치를 해야 했던 할아버지 영조와 다르게, 노론을 꺾어야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임금이었다. 그래서 그의 정치는 개혁적일 수밖에 없었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보다 10년 연하로 사도세자와도 불화관계에 있었지만, 정조 대에도 끝까지 노론 벽파라는 정치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이다.


- 보수 재등장 개혁세력 와해 -


정조는 학문연마와 자기 수양에 힘쓴 공부하는 임금이었고, 활쏘기가 명궁의 경지에 이른 문무를 겸비한 임금이었다. 개혁정책을 입안하고 탕평책을 추진하던 규장각과 친위부대인 장용영은 정조의 개혁정치의 상징이었다. 정조는 금난전권을 혁파하여 특권적인 시전상업체계를 바로잡고 관영수공업에 종사하는 장인들의 명부인 공장안을 폐지하여 수공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특권상인과 관영수공업에 의해 고통 받던 소상인과 소상품생산자들이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경제개혁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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