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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두가지 기준, 네가지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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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27 09:32 조회19,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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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이 잘못한 일도 없이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걸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들이 정치권의 유력 인사에게 부탁해서 해배를 요청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본 다산 선생이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천하에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에서 네 단계의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두번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너는 필천에게 편지를 해서 나를 잘 봐 달라고 하고 강씨와 이씨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 보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짓을 해야겠느냐?"

 다산 선생의 말씀처럼 살면서 우리는 이런 네 가지 경우 중 한두 가지를 경험한다. 옳음을 고수하다가 해를 입는 사람도 많고,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는 이를 수없이 보면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곤 한다. 그러나 다산 선생은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 때문에 해를 보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명박정부에서 장관으로 일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이 옳음을 고수하고 얻은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당사자들은 그른 방법을 통해 축적된 재산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부끄럽지 않게 재산을 모은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동산 목록이나 재산내역, 표절 의혹을 받는 논문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당사자들과 크게 다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표를 주었던 많은 국민들은 이들이 서민들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삶을 산 인물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7% 성장을 하고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가 된다 해도 부자들의 경제강국이 되고 말겠구나 하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가 철학 없는 실용주의, 도덕과 정직성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은 실용주의라면 이런 실용주의가 축적하는 부와 성장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다산 선생은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확고히 한 후에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정치가 잘 되었던 이유, 난리가 났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볼 뿐만 아니라 실용의 학문에 마음을 두고 옛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다.

 다산 선생이 경학을 공부하여 철학적 토대를 바로 세우고 역사 인식과 정치적 안목을 함께 갖춘 뒤에 실용의 학문을 하라고 가르치신 이유는 정치의 목적이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고 만물이 풍요롭게 자라게 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잃어버리기는커녕 그동안에도 여전히 재산만 몇 배씩 불어난 10년이었던 것을 확인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실망을 넘어 허탈함으로 고개를 돌리게 한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익과 손해, 경제적 이해와 득실의 관점에서만 나라를 이끌어가지 말고, 옳고 그름의 관점,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 가치 있는 일인가 아닌가 하는 기준에서도 사업을 판단하고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도종환/시인

(경향신문. 200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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