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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불행한 '국민 CEO'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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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6-06 12:31 조회18,0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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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시이오’ 이명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노무현의 어둠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반감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외신은 “이런 상황에선 개가 나와도 당선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명박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받았던 지지는 애초부터 ‘충성도 낮은 압도적 지지’라는 역설적인 현상이었다. 이런데도 그는 겉으로 드러난 승리에만 도취했다.

 

이명박의 두 번째 불행은 자신을 ‘국민 시이오’로 규정한 데 있었다. 그는 일국의 국가원수로 선출됐음에도 자신이 일개 기업인이라는 식의 언동을 하고, 그것을 되레 자랑으로 여김으로써 그를 뽑아준 유권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명박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시이오라는 말을 처음 내세웠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였다. 전 국민의 정치지도자 자리를 묘사하기에는 상스럽고 모욕적인 표현이긴 하나 그의 인생역정과 인물 됨됨이에 비추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려니 하고 ‘양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의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기업 총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적합하지도 않은 사람이 앉아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이명박의 세 번째 불행이자 국민 모두의 비극이다.

 

이명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이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기업인이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세계적인 대기업들 시이오의 인권관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그것을 원용하여 기업인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유추해 보자. 실제 인권과 기업인들이 생각하는 인권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우선 기업인들은 말 그대로의 ‘축어적’ 차원에서 인권에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인권의 의미를 묻는 ‘해석적’ 차원으로 들어가면서 차이가 드러났다. 예컨대 건강권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자사 제품이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그것을 인권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마케팅 이슈로 간주하였다. 또한 인권 보호 의무를 선행 비슷한 자선활동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인권 보호를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라는 ‘함축적’ 차원에서도 격차가 컸다. 인권 의무를 다하려면 기업 내 모든 활동에 인권 원칙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권 담당 부서를 따로 신설하기만 하면 된다고 응답한 것이다. 연구의 저자 애덤 맥베스는 “기업가와 인권운동가는 같은 어휘를 사용하지만 같은 언어를 구사하지는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이명박의 민주주의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말로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 국민의 비판을 단순히 소통과 홍보의 기술적 문제로 왜곡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 여론을 존중하겠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민주적 신념이라기보다 그저 마케팅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대운하를 놓고 대국민 심리전을 벌이는 것이 여론 존중인가? 그런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어쨌든 이명박은 선거에 의해 민주적 정당성을 수임받고 출발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와서 그의 사업가적 본성이 변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움직임을 제도 정치권과 공유하는 길밖에 없다. 직접행동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공존하는 방식이 우리 시대의 독특한 민주적 거버넌스 모델일 수 있다.

 

시이오 이명박은 자신에게 결여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주는 수많은 익명의 촛불들에게 뼛속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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