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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파워인터뷰 - 시대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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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23 13:03 조회17,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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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논하다]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 통일은 수단일 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분단으로 이득 보는 세력 남한에도 북한에도 있어 건전 중도세력 형성돼야"

 

"나름의 경력과 실행력 갖고 대통령직 수행한 사람은 박정희 김대중 두 사람 정도"

 

정치 
갈등과 분열, 대립과 반목의 이 시대를 넘어설 해법은 무엇인가. 세계적 경제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파워 인터뷰-시대를 논하다’가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들에게 물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길은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 손님으로 백낙청(71) 서울대 명예교수를 초대했다. 민주화와 통일·평화운동에 몸담아 온 실천적 지식인인 그는 “분단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남과 북 모두에 있다”며 “극우와 극좌를 극복하는 건강한 중도 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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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시대를 논하다'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첫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백 교수는 한평생 재야운동, 지식인 운동, 시민운동을 벌여왔다. 그는 한때 '북한쪽의 시각을 더 많이 보여주는 통일지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는 "분단으로 특별한 이득을 얻는 집단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다"고 했고, 통일지상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터뷰는 18일 오전10시부터 2시간동안 본사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요즘 우리사회를 규정하는 단어는 '분열과 대립'인 것 같다. 국회의 여와 야, 좌파와 우파 등 너나없이 투쟁과 대결의 양상이 너무 폭력적이고 격렬하다. 지금 우리시대를 어떻게 보시는지.

"맞다. 하지만 갈등은 하나의 생명현상인 것도 사실이다. 죽은 사회만이 갈등이 없다. 문제는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인 갈등이다. 우리가 그런 문제를 앓고 있는 게 분명한데, 우리가 대립과 분열을 개탄하면서도 그런 현실을 은근히 즐기는 경향도 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정말 두려운 것은 건전한 중도세력이 형성돼 사회를 공익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별로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을 방치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과거 사색당파를 얘기하면서 분열과 대립이 한국인의 본질이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민족이 싸움도 많이 했지만 뭉칠 때는 뭉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민족성'보다 우리 사회의 구조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맞다. 나는 분단현실이 쓸데없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조장하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 분단현실로부터 부당하게 이득을 보는 세력이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다."

-분단구조로 기득권을 누리고, 그 구조를 온존하려는 세력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분단구조, 혹은 '분단체제'는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조금씩 둥지를 틀고 있다. 특정인물이나 집단을 찍어서 "너는 분단세력이고 나는 통일세력이다"라고 말하는 건 온당치 않다. 또 그들이 취하는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사안별로 따져야 된다. 정부가 얼마나 민주화됐느냐에 따라서 분단구조를 지키는 정부라기보다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세력도 그 정부를 통해서 작용하는, 그런 복잡한 동력의 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은 표면상으로는 세상에 그보다 더 통일을 주장하는 정권이 없다. 통일지상주의인데, 그게 어떻게 작용하느냐, 통일에 정말로 도움이 되고 있느냐, 또는 북측의 체제유지에 더 작용하느냐, 이런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

-통일을 주장하는 그 주장과 구호 자체가 체제를 유지하는 데 복무한다는 말인가.

"통일을 너무 강경하게,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국민들이 거부감이 생긴다.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가 된다. "

-젊은 세대 중에는 통일 안 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왜 통일을 하냐는 주장도 있다.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통일비용을 지불하는 건 싫다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통일을 지상과제로 설정해놓고 우격다짐으로 젊은이들에게 이걸 따르라, 안 따르면 너희는 반(反)민족적이다라든가 아니면 단일민족이니까 반드시 모여 살아야 한다든가, 이렇게 강요하면 당연히 안 먹힌다. 그런 시대도 아니고 세계 전체로 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다 국가 하나씩 가지려다간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한반도에서 평화롭고 어느정도 넉넉하고 또 환경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이 목표고, 통일은 그 수단이라고 본다. 우리네 삶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사실은 적지않은 분단비용을 치르고 있다."

-민족국가가 지고선(至高善)은 아니지만, 분단으로 인해 경제발전의 한계라든가 전쟁의 위험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인가.

"생태계에 대한 무관심도 그렇다. 성차별적인 남성문화, 잔존하는 군사문화, 인권에 대한 무감각 등 우리의 교육과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이렇게 뒤쳐지는 건 분단이 큰 원인이다. 우리가 곳곳에서 분단 비용을 치르고 있고, 우리의 심성도 손상을 입고 있다. 젊은 사람이 “야, 내가 뭐 대한민국에서 적당히 먹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 통일은 무슨 통일이냐” 하는 것부터가 벌써 그 심성이 분단으로 인해 옹그라든 것이다. 분단체제는 또 남 탓하기에 꼭 좋은 체제다. 한국에서 뭐를 개선하자, 바로잡자고 하면 뭐 너는 북쪽이 낫다는 이야기냐? 정 그러면 거기 가서 살아라, 이렇게 나와서 토론이 끝나버린다. 아무튼 분단현실을 꿰뚫어보고 거기서 출발해서 그러면 어떤 방향으로 이걸 극복하는 통일을 할까 하는 수순으로 나아가야지, 통일의 절대적 당위성에서 출발해서 이를 내려 먹이는 건 안 통한다."

-선생을 통일 지상주의자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 것 같다. 민주주의, 건강한 경제의 성장, 친환경 분위기가 먼저고 그런 토대에서 통일로 가자는 것 같다.

"통일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한반도식 통일이란 다른 나라의 어떤 통일과도 성격이 다르다. 분단체제를 서서히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통일은 지금 진행형이다. "

-그 진행형은 언제 어떤 틀로 끝나나.

"6.15공동선언에서 통일을 천천히 단계별로 하자고 남북간에 합의했다. 처음에는 국가연합이랄지 아무튼 느슨한 결합의 단계로 가기로 했다. 그 단계까지만 가면 1단계 통일이 된 것이다. 2단계는 어떻게 가야 할지, 3단계가 또 있어야 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된다. 미리 분열과 대립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기왕 남북한 얘기가 나왔는데, 진보가 왜 북한에 그렇게 관대하냐는 비판이 있다. 북한의 인권말살, 수탈, 강제수용소, 공개총살, 세습체제 등에 대해선 관대하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선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진보라고 해서 태도가 획일적인 건 아니다. 세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첫째 실제로 북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람들이 있다. 동기는 제각각인데, 누구는 북한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 그럴 수 있고, 또 누구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다 보니까 그렇게 가기도 한다. 두번째로는 마음속으로 북한인권사태를 용인하지 않지만 현 시점에서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북측 주민들이 먹고 살게 해주는 '인간 안보'에 치중해야지 인권문제 얘기하는 게 북한의 진짜 인권개선에 도움이 안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셋째로는 진보단체들 중에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분들 꽤 있다. 역할분담문제도 있는데, 대북교섭담당자인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북한인권을 떠들어대기는 어렵지만 국가인권위나 다른 부서에서 침묵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선생은 그 분류 중 두번째에 대항하는가.

"(웃음) 크게 봐서 그렇다. 나는 진심으로 북한인권 문제는 조심스레 다뤄야지 정치선전이나 정치공세 식으로 다루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분단체제론'이란 학설이 북한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이론이 결코 아니다. 분단체제 전체의 책임을 북한정권에게만 묻는 건 일면적이지만 북한당국이 통일을 주장하는 만큼 분단체제 극복에 실제로 기여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분단체제에서 특별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다."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주체사상에 빠져본 적이 없다. 깊이 연구를 못해봐 길게 말할 건 없다. 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녘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에 관심이 있고 주체사상 그 자체에는 큰 관심 없다. "

-핵을 반대하는가.

"그렇다. 핵 폭탄은 어린이와 여자 등 특정 지역에 있는 사람을 무차별 살상한다."

-선생은 요즘 이명박정부가 회생불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시민사회가 앞장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회생불능이라기보다 이명박정부가 이대로는 난국수습을 못할 상태니까 합법적인 정부가 원만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게 시민사회가 도와주자는 거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권력을 잡겠다는 거냐고 오해하는데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는 동일한 게 아니다. 시민사회에는 보수와 진보적인 시민단체들 외에도 전문집단도 있고 언론도 있다. 그런 넓은 의미의 시민사회가 국정에 좀더 적극적으로 관여해 현재 고장 나 있는 대한민국의 '거버넌스 체계'를 수리해서 이명박정부가 5년의 임기를 원만하게 마치게 해주자는 발상이다."

-정당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도 분열돼 있다. 시민사회의 과연 합의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쪽에서 좀 덜 싸울 만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안 싸우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연습을 해보자는 발상이다. 국회의 추천을 받아 만들어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도 잘하면 새로운 거버넌스를 향한 하나의 실험일 수 있다고 본다."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노조가 활성화됐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성추행 사건 은폐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짓밟았던 여러 사례들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든, 노조든, 시민단체든 관료화된 거대한 조직의 자기 방어적이고 억압적 기제가 작동한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의 범죄 행위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지만 조직 경화의 문제는 있다. 그런데 모든 조직은 경화되기 마련이라고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는 반문이 나올 뿐이다. 사안별로 잘한 것은 북돋아주고, 잘못한 건 꾸짖어야 한다. '시민없는 시민단체'라는 표현이 있는데 모든 단체에 일괄적으로 적용해서 냉소적으로 볼 건 아니다. "

-그에 대해선 이명박 정부가 '시민단체는 사안별로 접근하라면서 왜 우리한텐 무조건 MB아웃으로 몰고가느냐'고 반론을 펼 것 같다. 이중잣대 아닌가.

"책임있는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정부를 완전히 악마로 규정하고 나가라고 하면 정부가 항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평범한 국민들에게 왜 우릴 몰라주냐고 원망하는 건 정치적인 무능일 따름이다. 국민이 좀 단순하게 판단해도 자신들을 신뢰하게 만들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작년 광우병대책위원회에 거의 모든 시민단체들이 다 들어갔다. 그때 나온 주장들이 과연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인가. 새벽에 청와대로 진격하자며 쇠파이프로 경찰 공격하는 걸 봤는데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양쪽이 다 충분치 못했다. 시위군중의 주장도 과장됐지만 덮어놓고 안전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광우병문제에 대한 과학적 논쟁이나 대립이었다면 매우 수준 낮은 토론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핵심은 좀 다른 것 같다. 인수위 시절부터 정권에 대해 쌓인 거부감과 불신, 거기다가 광우병문제를 가지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까 ‘민주공화국’의 구호를 들고 나왔던 거다."

-2003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나 이번에 MB아웃 촛불시위나 본질적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선불복종이라는 느낌이 든다.

"탄핵 때 대선불복 의지가 많이 작용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촛불시위의 경우는 대선불복 의지가 전혀 작용 안한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내가 찍은 사람이 떨어졌기 때문에 당선자를 인정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찍었는데 보니까 잘못 찍었더란 것이다. 이제라도 저 사람이 바뀌든지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 하는 거니까, 엄밀한 의미의 대선불복이라기보다는 합법적인 당선을 인정하지만 당선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불복종하는 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세계 경제가 위기상황이다. 신자유주의가 붕괴됐다고도 한다. 자본주의는 이 위기를 극복할까.

"신자유주의가 끝난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정책을 통해 이득을 보던 세력이 끝난 건 아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단기간에 와장창 깨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내 실력으론 예측 못하겠다."

-미국이 과거처럼 '수퍼 파워'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봐서 미국이 최강국의 자리를 쉽게 내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때처럼 미국이 전세계를 흔드는 시기는 지나갔다. 만일 중국경제가 치고 올라와 2위 자리를 차지하면 일본이 2위일 때와는 다를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고 평가 했는데.

"표현을 좀 바꾸면 소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로서는 꽤 유능하고 헌신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어디 주식회사인가. CEO처럼 자기 맘대로 하다 보면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생기고, 민주적인 가치도 훼손되고, 남북대결구도로 갔다. 그러한 사실과 그로 인한 부정적 유산에 대해서는 우리가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을 간략히 평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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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경륜과 실행력을 갖고 대통령직을 수행한 사람은 박정희, 김대중 두 대통령이라고 본다. 물론 평면 비교는 힘들다. 박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해서 독재권력을 휘둘렀고, 마지막 6년은 선거나 임기 걱정 없이 자기 할 일 했으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무리한 일도 많이 했지만 업적을 낼 여지도 많았다. 김대중씨의 경우는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민주화 투쟁과 야당 총재로서의 역할과 5년간 대통령으로서의 실적을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좌우한다는데 최근의 역사교과서 논쟁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민족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북쪽에 정통성이 있다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본다. 역사논쟁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은 역사가의 기본임무이고 밝혀진 사실을 이념으로 덮으려 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본다. 일단 밝혀놓고 그걸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는 이성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생은 미국에서 브라운대를 마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찌 보면 가장 친미(親美)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친미는 아닌 것 같다. 선생에게 미국은 뭔가.

"왜 나를 친미가 아니라고 보나(웃음)"

-오늘 인터뷰하면서 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죽어도 3.1절에 성조기 들고 시청에 나가는 친미는 안 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대한민국의 시민인 게 자랑스럽다. 동시에 나는 미국사회로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혜택을 입었다. 미국이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숭미세력이 많은 나라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갖고 왜 반미라 그러는지 모르겠다. 숭미주의도 미국을 무조건 악마시하는 반미주의도 다 찬동할 수 없다."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배노필 기자

◆ 백낙청 교수=1938년생. 서울대 명예교수,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시민방송 RTV 명예이사장,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 고교 재학 중 미국 신문사가 주최한 세계고교생 토론대회 한국대표로 선발됐고 브라운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했다. 1972년 하버드대에서 D H 로런스 연구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이래 분단현실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 왔다. 저서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 2),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등이 있으며, 40여 년간의 대담·인터뷰를 엮은 『백낙청 회화록』(전 5권)이 있다.


백 교수 인터뷰를 마치고 --------------------------------------

그가 변했나 … 그를 오해했나 …


“백낙청 명예교수가 달라진 것인가, 아니면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인터뷰가 끝난 뒤 가장 먼저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백 교수는 이론의 여지없이 재야, 지식인, 시민운동권을 대표하는 진보 진영의 스타다. 과거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 건 통일을 향한 그의 열정이었다. 그는 ‘분단 체제’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이 시대에 사는 모두가 ‘분단이라는 괴물’을 마주하고 있고, 그것이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도 들어앉아 있음을 강조했다. 이른바 ‘분단 모순’을 해소하는 게 시대의 가장 화급한 과제임을 외쳐 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그런 주장들의 유효성을 의심하게 만들 만했다. 백 교수는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와 김대중 두 사람을 평가 받을 만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두 사람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임을 감안한다면 백 교수의 역사 인식이 어느 선상에 와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이다.

그는 또 분단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세력은 북한에도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사실상 북한 정권 비판이다. 핵무기를 반대하고, 미국의 오바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면서 개인적으로 미국이란 나라에서 배운 게 많다는 말도 했다. 합법적인 정권을 몰아낼 순 없고 시민사회가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통치체제)를 통해 현 정권의 5년 임기가 무사히 끝나게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은 좌파 진영 시민단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결론은 두 가지다. 백 교수가 이제는 좌우 혹은 남북의 문제점을 모두 포용할 수 있게 된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그동안 그를 오해하고 있었거나.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중앙일보 2009.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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