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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전교조 20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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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0 08:30 조회18,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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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은 전교조 창립 20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전교조 20돌 기념행사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 전교조 자신도 국민적 추모에 동참하느라 행사는 조촐히 치른 듯하다. 뉴스를 찾아보니 기념행사 중에 5월23일의 ‘시민·학생·학부모·교사결의대회’에서 모금한 돈을 용사참사 유가족들에게 투쟁기금과 장학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마음이 훈훈해졌는데, 전교조 뉴스를 보고 마음이 훈훈해진 게 참 오랜만이라는 착잡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

 

생각해보면, 전교조야말로 80년대 민주화투쟁의 적자였다. 엄혹했던 86년 5월10일에 교육민주화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전교조 운동은 1989년 창립 직후 불법화되어 소속 교사 1527명이 파면·해임되었으며, 10년 만에 합법화되었고, 합법화 후 촌지거부 운동 등을 펼쳤고 사립학교법 개정투쟁으로 나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교조는 교육민주화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16대 국회에서 이루지 못한 사립학교법 개정이 17대 국회에서 이루어질 즈음인 2005년, 전교조는 이미 교원평가제 반대투쟁으로 대중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전교조의 주장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근무평정제가 있는데 거기에 교원평가제를 더한다니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거니와, 정부의 주장처럼 교원평가제가 공교육의 질을 제고할지도 확실치 않다. 오히려 교원평가제는 암암리에 교육의 질이 낮은 이유를 교원에게 전가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진 면이 크다.

 

하지만 시민들은 전교조보다는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그것이 전교조 일각에서 생각하듯이 전교조의 생각은 잘 전달되지 않은 채 시민들이 정부의 선동에 넘어가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교원평가제가 학부모와 학생에 대해 교사가 가진 결코 작지 않은 권력을 견제할 수 있으며, 웰빙족이 되어버린 상당수 교사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으며, 공교육의 질을 일거에 향상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도움은 분명히 되는 제도로 생각했다.

 

전교조가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지 속에서만 참교육을 실현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다면 교원평가제를 수용하는 동시에 교원평가제의 구체적 방식을 놓고 투쟁과 협상을 진행시켜야 했다. 올해 초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근평을 폐지하고 승진제도를 전면 개혁하는 논의구조 속에서 교원평가제를 다루자는 제안을 했지만, 진작 했어야 할 제안을 하는데 여러 해를 허비한데다가 제기 방식도 여전히 수세적이어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내년에 교원평가제 전면실시가 예고된 마당에 좀더 전향적이고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제안이 필요해 보인다. 예컨대 구체적 실행안 마련을 위해 전교조와 교과부 외에 시민단체 대표를 포함하는 협의기구와 공청회 조직화를 제안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근평이 가진 억압성과 관료성도 새롭게 문제 제기될 것이며, 시민단체 대표를 심판 삼아 좀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교조 안에는 촛불항쟁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로 인해 강화된 반엠비(MB) 전선에 의탁해 초·중등교육법의 교원평가제 관련 개정을 막고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작년 서울시교육감과 올해 충남교육감 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반엠비 전선이 교육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에 전교조가 나서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지금 요청되는 것은 교원평가제를 수용하는 담대함을 보이는 동시에 새로운 교육개혁 의제를 도전적으로 제기하는 전교조이다. 그렇지 않고 반엠비 전선 뒤에 웅크린다면 그 전선마저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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