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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우리시대에 던지는 ‘용산’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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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1 09:26 조회18,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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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민들이 한창 출근 준비에 바쁜 새벽,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의 작전은 예고없이 시작되고 생존권 사수를 주장하기 위해 조립된 망루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입니다. 농성에 들어간 지 겨우 26시간 만에,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세입자·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타오르는 불길에 숨지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경위가 어떻고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기 전에, 정부는 사건의 발생 자체에 책임을 느끼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야 마땅합니다. 더불어 엄밀하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처벌할 일이 있으면 처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힘 없는 서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40일이 지난 오늘까지 정부는 숨진 철거민과 세입자들, 그들의 유족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습니까. 10년, 20년 살며 자식을 키웠던 생계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 농성에 나섰을 뿐인데, 그러다 철거용역들에게 구타당하고 공권력의 진압으로 불타 죽은 것인데, 그 주검을 지금까지 장례조차 못 지내고 있습니다.

참사에 사과조차 없는 정부

정부와 투기자본의 잔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고인의 아들을 잡아가고,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할머니를 구속했습니다. 이 참담한 용산의 현실은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책임있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도시재개발은 당연히 거대한 이익을 낳고, 이익은 투기자본과 용역깡패들을 불러들입니다. 지주들도 한몫 참여합니다. “아파트 평수 넓히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폭력이 있어요.” 어느 철거민 할머니의 이러한 탄식처럼 도시 소시민들의 팽창 욕망은 그 자체가 폭력성을 함축합니다. 그리하여 집도 땅도 돈도 없는 세입자들만 폭력의 카르텔에 쫓겨 순식간에 생존의 근거를 잃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남은 수단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싸우는 것입니다. 전철련은 그래서 생겨난 자기보위적 조직입니다.

그런데 집권당은 소리쳐 항의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수단도 없는 철거민들을 ‘도시 게릴라’ 또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수많은 무주택자들과 상가 세입자들을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의 국가공동체 바깥으로 추방하겠다는 극단적 발상입니다.

재개발이니 주거환경 개선이니 하는 명목으로 서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태가 묻힌 곳에 내 뼈를 묻으리라”는 절규 섞인 구호를 붉은 페인트로 담벽에 썼던 대도시 근교의 농가들은 벌써 수십년 전에 박살나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 이름 좋은 뉴타운이 됐습니다.

고향에서 축출된 농민들이 낯선 도시를 배회하고 유랑하는 동안, 건설자본가들은 먹이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쫓겨나는 서민들 편에 서야

아무리 정치가 형식적으로 민주화된다 하더라도, 공동체가 파괴되고 ‘자기의 땅에서 유배된 사람들’이 양산되는 한,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에게 희망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요구를 선언합니다.

대통령은 용산참사를 사과하고 무리한 강경진압의 지휘자를 처벌하라.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구속된 철거민들을 즉각 석방하라.

경찰과 검찰 등 공권력은 일방적으로 투기자본과 개발조합의 편에 서지 말고 세입자가 자기 요구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정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되어온 도시재개발 정책을 서민 위주의 생활개선 정책으로 전환하라.

염무웅 문학평론가

(경향신문. 20009.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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