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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외] “‘정착형 이민사회’에 걸맞은 정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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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2 13:40 조회20,0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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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의 급증은 우리 사회를 다문화사회로 급속하게 전환시키면서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문화가족 구성원에 대한 각종 정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순혈주의 등에 기반한 폐쇄적인 문화도 비판적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문화나 다문화사회와 관련된 담론이 생겨나고, 다문화사회 속에서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와 이숙진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 가지는 의미, 관련 정책의 문제와 개선책, 시민사회에 요구되는 의식 변화 등을 짚어봤다.



김현미 교수(이하 김)=현재 국내의 결혼이주여성은 약 15만명입니다. 단기간에 이 같은 다문화가정의 급증은 놀라운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정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 단일 민족주의·폐쇄주의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고 있다는 신호로 봅니다. 과거 우리는 한국인끼리의 ‘순혈 결혼’을 가장 이상적인 결혼으로 여기면서 국적·인종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은 누구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적·인종을 초월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급변하는 것이죠. 둘째는 한국 사회는 분명 이민국가가 아닌데 결혼이주여성의 증가로 이민허용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주여성이 정착하면서 최초의 정착형 이민자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국적의 배우자로, 한국 아이를 낳는다는 조건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분명 정착형 이민자들입니다.

이숙진 교수(이하 이)=다문화가정의 증가는 이미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큰 흐름이라고 봅니다.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 간 결혼은 우리 사회의 구조상, 여러 제도나 장치들로 가속화되고도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양적 확대는 우리 순혈주의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또 함께 살아간다는 것, 다문화사회 속에서 공존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결혼이주는 노동이주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죠. 노동이주의 경우 정책은 노동시장의 반발 등으로 규제와 배제의 형태가 될 수 있죠.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은 자국민 통합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문화가족은 분명 우리 이웃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문화가정 증가는 또한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 다문화, 다문화사회와 관련된 각종 담론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도 큽니다. 그러나 근래 다문화 담론은 이주여성들로만 집중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외국인 노동자·새터민 가족 등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문제죠. 다문화 담론에서도 위계가 생기는 등 비다문화성이 보이는 것은 지적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정책을 분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결혼이주 15년이 됐지만 특별한 정책이 없다가,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회의 석상에서 “다인종, 다문화로의 진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다인종·다문화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정책들이 나왔고, 지난해에는 관련된 3개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법안·정책에는 그 대상이 되는 이주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깔려있다는 겁니다. 저개발·빈곤 국가에서 온, 학력이 낮은, 한국어도 못하는, 다른 능력도 낮으며 수동적이고 무력하다는 이미지죠. 그래서 이들이 엄마로, 부인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선 도와줘야 한다는 온정주의, 시혜적 입장에서 법안·정책의 틀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자민족 우월주의가 깊이 깔려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TV 등 미디어상의 이주여성 이미지가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주여성들은 세탁기가 있는데도 손빨래를 하고, 한복을 입고 문안인사를 하는 식이죠. 각색된 이미지이자 향수적인 한국적 문화를 재현하게 하는 겁니다. 베트남·몽골 여성 등은 김치가 매워서 잘 못 먹는데 그런 것은 삭제되고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시장 가서 억척스럽게 깎으면 “한국 여자 다 됐네”라고도 하죠. 아이를 낳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효부 며느리라는 이미지로 이주여성을 고정시킵니다. 즉 이주여성의 역할이 무엇에 한정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식이죠. 이런 요소들이 이주여성을 판단하는 근거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정책상의 큰 문제는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일이 사건화되고, 그 사건에 대한 사후약방문 형식이 된다는 점입니다. 정책은 사건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제 우리가 다문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로 어떻게 갈 것인가 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사건 대응이 아니라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문화사회를 제도·정책적으로 어떻게 정착시킬까하는 큰 방향, 틀을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논의 과정에서 다문화 주체들이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내게끔 해야 합니다.

김=각 부처가 거의 모두 단기·임시적 사업을 벌이는 등 부처간 경쟁적인 사업 추진도 문제입니다. 부처간 사업을 조정·중재하고, 나아가 평가하는 작업이 없습니다. 사업의 중복을 막고, 체계적이고 통합적이며 장기적 전망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만도 방관정책을 취하다가 결국 혼란스럽고 중복이 많자 2007년 새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총괄 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다문화가정과 관련된 문제는 여느 문제와 달리 부처간 연계가 중요합니다. 특정 부처만이 처리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죠. 총괄기구에 대한 부분은 법무부 등 일부 부처에서 큰 관심을 가지면서 고려되기도 한 것으로 압니다. 사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서비스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키를 쥐고 있는데, 복지부만으로는 될 일이 아닙니다. 복지뿐만이 아니라 문화, 교육, 고용 등 수많은 문제가 포함되는 것이니까요. 설사 중심 부처(헤드쿼터)가 있더라도 현장의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이주여성의 경제적 자립, 자활 등의 프로그램을 한 부처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이런 프로그램에 아예 참여도 할 수 없는 여성들에 대한 부분도 챙겨야 합니다. 또 그 자녀들의 문제는 별도로 이뤄져야 하고요. 다문화가정지원센터가 100개까지 확대됐지만 모든 이주여성들이 이 센터를 찾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최일선 이주여성과 중간 매개체, 지자체, 정부 등의 긴밀한 네트워킹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이 네트워킹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정부는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을 훼손하거나 또 이와 경쟁하기보다는 항상 민관의 협조체계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현장의 제안, 목소리를 충분히 수용해야 합니다. 사실 다문화가정 관련 문제는 정부·지자체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나아가 시민들의 인식제고도 참 중요합니다.

이=고학력에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 출신의 한 이주여성이 영어학원 강사가 됐습니다. 열심히 강의를 했는데 그녀는 몇달 지나지 않아 쫓겨났습니다. 학부모들이 그녀에 대해 ‘원어민(네이티브 스피커)’이 아니라고 반대한 것이죠. 이 여성은 영어 원어민은 백인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우리들이 이주여성들의 장점과 잠재력, 능력에 대해 고정관념으로 재단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10년 동안 영어를 해도 잘 못하면서, 이주여성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죠. 이주여성을 기다려줄 줄 모르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 차별의식 등을 살펴볼 때입니다.

김=그렇습니다. 정확한 조사·연구도 없이 다문화가정 2세는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심리적 부적응자라는 이야기도 고정관념, 차별의식, 편견에서 나옵니다. 이미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주여성들의 역량강화로 봅니다. 다양한 국적과 학력, 직업적 전문성을 가진 이주여성들의 본국 자격증을 인정하고, 또 재활용해 상급학교 진학이나 전문직종의 취업 등에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다양한 능력과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이들은 문화 운반자들이며 향후 국가간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뉴 시티즌’으로 봅니다. 새로운 시민들이죠. 무엇보다 문화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시민사회에 확산되고, 이들도 한국 사람이 가지는 것을 동등하게 가질 때에 그 어떤 정책, 지원도 제대로 효과를 볼 겁니다. 또 이 엄마들의 역량 발휘가 곧 2세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 자녀들의 역량강화가 될 것입니다.

이=자녀들이 학생인 이주여성이 5만8000명으로 집계됩니다. 이주여성 엄마들은 자녀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 방과후 생활에서 다문화가정의 자녀란 이유로 달리 대접받는 것을 고통스러워합니다. 이질적이고 다른 존재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에선 사실 경제활동 능력이 중요합니다. 이주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경제적 활동을 하면 가족내에서는 물론 이웃, 사회와의 관계도 달라질 겁니다. 따라서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특성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 확대 지원할 때입니다. 최근 다문화강사, 학교 등에서의 각 부문 보조 교사 등이 좋은 사례이죠. 다양한 능력이 있는 이주여성들,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이 새 문화 창조자이자 기획자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몫입니다.


 

(경향신문. 2009.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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