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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조중동을 봐선 안될 또 한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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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23 11:19 조회28,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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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에 반감이 많은 내 또래의 친구들 가운데서도 그런 신문을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상품권 받고 1년 무료 구독 후에 1년만 봐주면 되니 퍽 싼 신문이라는 것이 그 일차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그렇게 신문을 보면 대략 10만원이면 2년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은 조중동을 본다고 해서 그것의 영향에 굴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자신이 술에 대한 통제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듯, 조중동을 보지 않고 살기를 결단하는 것은 아침 시간에 넘겨보는 조중동 기사 하나하나의 영향력을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점을 나는 요즘 체험으로 실감했다. 얼마 전부터 우리 집 앞에 <중앙일보>가 던져져 있었다. 새로운 일도 아니고 굳이 보급소에 전화해서 항의하지 않아도 때가 되어 구독을 권유하러 보급소 직원이 찾아오면 그때 물리쳐도 된다고 생각하고 중앙일보를 그냥 들춰보았다. 정치기사의 선택과 배열, 표제어 구성, 해괴한 논리의 칼럼들에서 느낀 체험의 대강은 혐오감과 불쾌감이었다. 하지만 그런 혐오를 느낄 틈새도 없이 파고드는 섹션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월요일마다 본지에 끼워져 있는 ‘프리미엄 교육 섹션, My Study(마이 스터디)’이다.

 

거기에 연재되는 것으로 예컨대 ‘특목고 멘토&멘티’ 같은 것이 있다. 내용은 특목고 입시로 고민하는 중학생에게 명문 외고 재학생이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특정 학생의 상세한 성적표까지 예시하며 분석하는 학습 컨설팅도 실려 있다. ‘공부 1등 따라잡기’ 같은 연재기사는 각 학교의 전교 1등들이 커다란 사진과 함께 등장해 자신의 공부법을 설파한다. 수시 입시 원서접수 기간 직전에는 수시 컨설팅을 어떻게 받는 것이 효율적인지, 어떤 컨설턴트가 믿을 만한지를 기사로 실었다. 중간 제목을 몇 개 옮겨보면 이렇다. “성적·목표대학 분석 뒤 상담에 임하라”, “적성고사 등 수치화하기 어려운 변수 많다”, “입시컨설팅과 학습컨설팅을 구분하라”, “부모가 아닌 학생이 직접 상담을 받아라” 간결하고 핵심을 찌르는 행동강령들이다. <한겨레>의 ‘함께하는 교육’이 한 바닥의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데 비해 중앙일보의 ‘마이 스터디’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느 학원을 찾아가고, 누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어느 대학에서 어떤 경시대회를 치르는지를 알려주며, 그럼으로써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눈길을 단번에 낚아챈다.

 

거리감을 두고 보면 ‘마이 스터디’ 섹션 뒤의 음험한 거래가 엿보인다. 마치 조중동에 새 아파트에 대한 분석기사와 분양광고가 함께하는 것처럼, 입시전문 학원강사들이 그 섹션에 입시 컨설팅 칼럼을 쓰고 입시학원들이 그 섹션의 광고를 떠맡고 있다. 이쯤 되면 중앙일보가 우리 사회의 입시산업과 이해관계를 달리한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입시산업과 보수신문의 사이좋은 상호재생산을 눈치챈다고 해도, 속살거리며 다가와 왜곡된 입시경쟁을 폼 나는 생활양식으로 고양해 보여주고 행동의 팁으로 정돈해주는 기사들의 매혹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수신문의 헤게모니적 힘은 정치기사에서보다 이런 영역에서 더 매끄럽게 관철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 힘은 대중적 설득력을 갖춘 대안적 교육체제의 구체화에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도 우선은 보수신문이 유도하는 현 체제에 대한 적응 강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것이 아예 보수신문을 들춰보지도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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