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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소프트파워 대국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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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30 14:03 조회26,5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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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문화파워’ 강조
공자 아카데미·고전 번역에
미국에 중국어 강좌 지원도
새 문명 대안 될지는 의문


지난해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은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 문화공연에서, 중국은 더 이상 문화대혁명이나 가짜 식품, 총칼과 일당독재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진시황과 같은 거친 남성의 나라가 아니라 공자와 붓, 그림, 화선지의 나라, 온유한 여성의 나라였다.

 

중국이 이렇게 새로운 중국이미지를 만들고 중국 문화의 힘과 저력을 세계에 선보인 것은 올림픽을 위한 일회성 행사 차원이 아니었다. 21세기에 문화대국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 못지않게 문화의 건설이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2002년 공산당 16차 대회에서 ‘문화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각종 회의와 정책에서 ‘문화’ ‘소프트파워’ ‘문화 파워’ ‘문화대국’ 등의 개념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문화 소프트파워 관련 주제가 당과 정부 간부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집단학습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중국 지식인들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의 노력은 우선 전통문화의 가치와 문화유산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중국 전통문화는 늘 타도와 청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전통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전통문화 유산을 보호하고 재건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고, 공자를 되살리는가 하면, 노동절 휴일을 줄이는 대신에 추석과 청명절 같은 전통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문화산업의 열악한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 문화산업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막대한 자금도 관련 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중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사업도 활발하다. 이미 세계 81개국에 세운 공자아카데미를 통해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교육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어를 말하는 세계인을 1억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고, 미국 고등학교에서 중국어 에이피(AP·Advancement Placement) 과목을 개설하도록 7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중요한 사상서적 300권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여 외국에 소개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고, 외국인들에게 서예와 쿵후, 경극 같은 중국 전통문화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텔레비전 채널과 인터넷 방송국도 건립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중국의 전통 사유방식, 중국의 전통적 지혜를 세계에 수출하려고 하고 있다. 조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자세, ‘화이부동’의 정신, 민본사상, 효 사상 등이 그것이다.

 

중국은 문화대국 건설 작업과 문화 소프트파워 수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개선되고 중국위협론이나 중국붕괴론 같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줄어들며 중국의 지혜가 세계에 새로운 문명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공산품이 세계를 휩쓸듯이 중국문화와 소프트파워가 세계를 휩쓸 수 있을 것인지,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물론 지금 세계 도처에서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관심은 주로 중국 경제에 대한 관심의 부산물 차원이다. 그럴 때 관건은 중국문화가 그 자체로 매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 문화의 가치와 매력을, 그리고 중국 전통적 가치관이 어떻게 새로운 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지금 중국의 현실에서 구현하여 세계인들에게 실증해 주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세계에 수출하려는 문화적 가치와 중국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중국문화학)

(한겨레 200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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