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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특목고 폐지를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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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4 05:50 조회19,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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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놀랐다. 일제고사를 강행한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대담한 친서민 정책을 내민 것에. 하지만 곧 현실적 힘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특목고 교장들이 모이고 보수신문들이 맹공하는 한편, 정책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연말까지 안을 내겠다고 나서고 대통령이 “수월성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한마디 하자 특목고 폐지안은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일이 아니다.
 

현재 고교는 이미 더 이상 평준화 체제가 아니다. 현재 특목고와 자사고 그리고 국제고의 한 해 모집인원은 1만명에 육박하며, 이런 수치는 평준화 이전 세칭 일류고의 모집인원과 거의 같다. 그리고 이 수치가 학령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준화 이전의 1.3%보다 더 많은 1.5%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평준화를 도입해야 했던 그 시절보다 더 심한 입시경쟁 속에 있다.

 

혹자는 상황이 이러하니 특목고를 자율고특성화고가 아니라 일반고로 전환함으로써 평준화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변화를 도모하자면 불가능한 것을 목청 높여 외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목고 폐지안을 여당과 정부가 접으려는 것에서 보듯이 특목고의 학생-학부모-졸업생은 이미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집단의 기득권을 소멸시키는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은 이 정부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거니와, 어떤 종류의 정부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다음 정부가 매우 민주적인 정부가 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교육개혁을 이룰지 알 수 없고 그런다 해도 효과가 발생하려면 앞으로 5~6년이 걸릴 것이다. 해마다 더 나빠지고 있는 고교 입시 상황을 손 놓고 견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개혁진영이 여당에서 나온 ‘특목고의 특성화고나 자율고로의 전환’을 지지하고 칭찬해야 하며, 적극 추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 우선 급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특목고 폐지안을 제대로 실행하면 여당과 정부의 지지율도 상승할 것이며, 내년 지방 선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지할 것은 지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원론으로야 특성화고로의 전환이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고, 자율고로의 전환이 가능하겠지만, 거기에도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현재 특목고가 누리고 있는 교육청의 지원금과 선발권의 유지 여부, 그리고 자율고 법인의 재단전입금 기준이 그것이다. 제도적 타협이 어디서 이루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선발권을 제외하면 기존 특목고에 상당한 양보를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 의제를 살려나가며 그것에 민주적 요구를 투입하는 것 자체이다.

 

예상컨대 특목고의 자율고 전환이 이루어지면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은 기껏해야 지금보다 더 늘어난 일류고와, 이류고의 체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현행 체제는 아주 적은 수의 일류고와 다수 이류고의 체제이다. 지금 도입되고 있는 자율고는 그 체제를 일류고(기존 특목고와 국제고와 자사고)와 이류고(자율고), 그리고 일반고라는 삼류고의 체제로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특목고의 우수 학생 독식과 입시 횡포를 구조적으로 저지하는 문제는 긴급하며, 이명박 정부 아래서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규모로 불어나고 내부적으로는 균등해진 일류고(자율고)와 일반고 체제가 현재의 체제보다는 한결 낫다고 할 수 있다. 최대강령주의를 버리고 집요한 민주적 요구를 해야 할 때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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