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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정두언과 그락쿠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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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9 08:20 조회19,6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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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투 끝에 재보선이 끝났다. 승패는 갈렸지만 선거 의제는 분명하지 않았다. 통합의 구도를 만들지 못한 민주당도 명분을 장악하지 못했다. 손학규 전 대표를 빼고는 누구도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뚜렷한 승리자는 선거판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정두언 의원은 결연히 외국어고 폐지를 주장함으로써 정책 의제를 틀어쥐고 국민의 편에서 싸우는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외고 폐지'로 정책의제 선점

교육문제는 향후 민주주의와 서민ㆍ 중산층 경제를 아우르는 핵심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시장주의자들은 교육문제의 주범을 '평준화'로 지목했지만, 평준화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평준화는 사실이 아니고 격차가 현실이며, 경쟁 기회의 불균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영희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대 입학자의 출신 고교는 상위 20개 고교 중 특목고 15개, 자립형 사립고 2개였다. 일반 고교는 3개에 불과했는데, 모두 강남 3구에 있는 학교였다. 중앙일보가 분석한 5년간의 전국 고교별 수능성적 자료에 의하면, 수능 1~2등급 이상 학생 비율에서 특목고와 일반고의 격차는 매우 크다. 최근 5년간 언어ㆍ외국어ㆍ수리 영역 상위 10위 고교 중 일반고는 공주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특목고가 차지했다. 이 기간 중 영역별 3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일반고도 12곳에 불과했다.

 

관련된 통계가 부족하지만 일반 국민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특목고가 중학교 성적 상위자를 싹쓸이하면서 교육비도 훨씬 많이 쓰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외국어고는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에 비하면 매우 편법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라는 교육법상의 정의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교육내용이 획일적이 평가방식이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시는 사교육 증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고, 시민들의 고통은 비등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교육경로는 두 길로 분화될 수밖에 없다. 현명한 '교육비 테크'를 권하는 한 신문기사에 의하면, 공립 초중고를 거쳐 국내 4년제 국립대학으로 가는 길은 6,000만원대의 교육비가 든다. 다른 코스는 사립 초등, 국제중, 특목고를 거쳐 아이비리그에 유학하는 길인데, 6억원 대 교육비가 소요된다고 한다.

교육 격차가 정도를 넘어 교육 양극화로 발전하게 되면 공화정은 위기를 맞게 된다. 정두언 의원은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면서 "외국어고 제도는 이미 현저하게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공화정의 호민관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정두언 의원이 좌절할 가능성도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어고를 수월성 교육의 성과로 강변하고 있다. 사교육 문제에 대증요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다루자는 주장도 있다. 외고 폐지론에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려는 시도도 계속될 것이다. 외국어고의 학벌 네트워크도 급성장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법조인 가운데 대원외고 출신이 경기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더 많은 '호민관' 출현했으면

아테네나 스파르타는 중산시민에 기초한 공화정을 발전시켰으나, 로마 공화정은 혈통귀족과 부유한 평민 세력이 강했다. 그락쿠스 형제는 중산층의 경제기반을 안정화하려 시도했으나 그들의 개혁은 때를 놓친 것이었다. 귀족의 지배와 무자비한 사회적 양극화를 돌이키려는 형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로마의 공화정은 하염없이 시들어갔다.

이제 한국에서는 교육의 양극화를 막는 것이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일이 되고 있다. 정파를 떠나 시민과 함께 하는 호민관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일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신대. 2009.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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