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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우리 안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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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2-16 08:47 조회18,5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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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서 악을 발견하는 시선 자체가 악을 품고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비판자 자신에게 되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선거 규칙이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긴 해도 이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집합체로서 대한민국 시민들이며, 그가 표상하는 가치관으로부터 우리 사회 성원들이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 언급되듯이 내 아파트 값이 치솟고 내 아이가 명문대를 입학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이 대통령의 당선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자기비판의 몸짓이 ‘우리 안의 이명박을 몰아내자’거나, 이명박의 대운하보다 더 도도하게 흐르는 ‘우리 안의 대운하’부터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를 때, 거기서 우리는 자기비판의 과잉을 발견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성토’가 자기비판을 회피하려는 은폐된 시도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듯이, 자기비판의 과잉 또한 비판 대상에게 면죄부를 부여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우리 자신의 속물성을 지적하며 그것을 선결과제로 내세우는 ‘발본적’ 비판은 나쁜 것과 덜 나쁜 것을 분별하는 ‘지상의 척도’를 세우기 어렵게 하고, 사회적 투쟁 의지를 죄의식으로 물들인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란 자신의 비판 행위와 공적 발언의 일치를 지향하며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는 존재라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앞으로 내던지는 방식으로 성찰이라는 과제를 이행하기도 하는 존재라는 점을 무시하게 된다.

 

균형감을 가지려면 가치관의 일신과 존재의 전회 또는 메타노이아를 고창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선호가 사회적 기회구조와 연동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많은 우리 사회 성원들이 속물적이기보다는 범속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인의 도를 따를 만한 의지와 능력이 모자라더라도 제도적인 기회가 열린다면 자신 안에 있는 속물적 성향보다는 더 생태적이고 더 평등한 삶에 대한 지향을 발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입시경쟁과 아파트 투기 혹은 연줄과 후견관계에 경사되는 것은 제약된 기회와 기형적인 제도의 산물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왜곡된 제도와 좁은 기회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성공과 패배의 누적이 그들의 선호와 가치관을 일그러뜨려 왔지만, 그것에 맞서는 대안적 가치관과 선호를 남김없이 갈아 없앨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경쟁에 제 아이를 내몬 부모조차도 그런 전체 과정을 분노와 탄식과 안타까움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생활세계는 강한 내적 긴장상태에 있는 것이지 속물화의 높은 파고에 붕괴해버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학의 위험까지 내포한 자기비판의 엄격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화해된 삶을 향한 지향을 위한 제도적 수로를 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 풀뿌리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쳐져 있다. 그런 과제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면, 면밀하게 고안된 제도적 대안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느끼게 되며 그런 과제에 비해 우리의 역량과 노력이 한참 모자란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대안들이 구체성을 가질 때마다 사회적 선호와 가치관도 변화할 것이며, 그만큼 혁신의 역량도 불어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지점은 역시 정치적 대안의 조직화이다. 그러므로 선거연합에 대해 논의하고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혁신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 안의 이명박을 몰아내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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