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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소현'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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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7-29 20:02 조회17,4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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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2+2회의로 한미동맹은 더욱 견고해졌다. 미국과 갈라서는 것이 아니고야 동맹이 강화되는 데 유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주변 4강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 할 한국으로선 이런 편중이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닐 터다. 사실 천암함 이후 미국의 행보는 과연 정권교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갈 정도로 철저히 국익 우선주의다. 자칫 시련에 들 수도 있었을 미국의 동북아 군사정책은 이 사건을 기틀로 일거에 역전되었다. 최근 중국의 조야(朝野)가 한 목소리로,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 급행열차에 올라타고자 하면서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편승하는 전략분열증에 걸렸다고 비판하는 연유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말로 지혜로운 균형을 잡는 일이 얼마나 사활적으로 종요로운가를 절감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읽을 만한 역사소설을 만났다. 김인숙의 『소현』(자음과모음, 2010)은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커녕 올이 촘촘하기 짝이 없다. 집필에 무려 5년이 소요된 이 장편은 인터넷을 매개로 하면서 쓴다는 것의 의미가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 짐짓 비껴나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장편은 통상적 역사소설이 아니다. 『임꺽정』처럼 민중반란의 과거사를 거울 삼아 동시대의 출구를 모색하는 모형을 정통으로 친다면, 세자 소현(昭顯, 1612~45)을 주인공으로 한 김인숙의 작품은 얼핏 궁정물(宮廷物)에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37)의 치욕적 패배 속에 볼모로 끌려가 드디어 1645년 음력 2월 귀국했다가 두달 만에 급서한 소현은 궁정의 중심은커녕 먼 이방에 유폐되어 있었기에, 더욱이 보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그의 시대가 유산된 터라 궁중암투극의 주인공과는 애초에 인연이 멀다. 그렇다고 외세를 물리친 민족영웅도 아닌지라 그는 역사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어려운 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다. 소현세자야말로 우리 역사 속에 철저히 침묵당한 타자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이 인물의 영혼과 육체 속으로 침투한다. 그렇다고 소현은 기리고 그에 적대적인 인물들은 탄핵하는 이분법적 대응은 사양한다. 이 점에서 작가는 냉철하다. 권력 또는 욕망의 연기(緣起) 따라 일어나는 인간사의 분란을 그 필연의 행로로서 아프지만 높은 체념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조선에 치욕을 안긴 청(淸)이 조선을 원조한 명(明)을 대신해 제국으로 등극하는 바로 그 현장을 목격한 소현은 이미 북경에 도착한 서양조차 인지하면서 청에 대한 복수와 굴복 사이에서 분열된 조선의 쇄신을 꿈꾸는데, 소현의 꿈에 작가는 깊이 공감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청을 뒤에 업은 라이벌로 상정하고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조(仁祖, 1595~1649)를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못남까지 연민한다. 물론 작가는 양시론자 또는 양비론자가 아니다. 소현에 대한 거의 피붙이 같은 속정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에게도 앨쓴 이해력을 견지한 바로 그 때문에 소현의 비극은 말길 너머의 압도적 절실함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청과 조선 사이에서 겪은 이중의 모멸 속에서도 상처입은 백성들과 함께 새 나라의 혈로(血路), 그 개혁․개방의 길을 온몸으로 암중모색한 소현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결국 추락했다.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을 폐위한 그 노인들이 다시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양란(兩亂)을 댓가로 우리가 얻을 최량의 선택들을 압살했다. 절망이 희망을 살해한 것이다. 실력도 없이 북벌(北伐)을 외치고 우물 안 개구리의 눈으로 소중화(小中華)를 자만한 호란 이후 조선사회는 쇄신 없는 연명의 비극 속에 함몰되었으니, 역사가 조선을 배신한 것인가, 조선이 역사를 배신한 것인가?

 

좀체로 교착상태가 타개되지 않는 이 답답한 시대에 하필 소현세자의 망령이 출현한 것이 웬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서동만의 『북조선연구』(창비사, 2010)를 읽다가,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내부변화 없이 동구 및 소련의 붕괴를 맞은 북이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 제일주의’로 나아가면서, “북한 사회주의야말로 세계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긴다는 대목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명 멸망 이후 조선을 최후의 문명국으로 상상한 소중화론의 재판이 아닐 수 없다. 개혁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활용되기 쉬운 이러한 자기인식은 북을 위해서나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것이 결코 아닐 터이다. 그런데 이는 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민심의 무서움을 새삼 일깨운 지방선거 이후에도 이명박정부의 행보는 내정은 물론이고 외교에서도 경직적이다. 북을 달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도록 추동하기는커녕 북을 오히려 중국, 미국, 일본 쪽으로 모는 형국이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다시 서동만에 의하면, 북은 “2002년에 들어서야 시장적 개혁에 착수했”는데, 이는 “2000년 6.15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남측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완화된 정세와 연동”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진전된 북의 시장적 개혁이 이명박정부의 강공으로 어떻게 붕괴되었는지는 생생히 목격한 바이거니와, 한반도에 떠도는 소중화론의 망령이 ‘소현’들을 곳곳에서 핍박하는 것이 아닌가 새삼 두렵다. 김인숙이 걸어놓은 시대의 경종을 단호히 의식함으로써 우리의 ‘소현’을 살리자, 다시금 마음부터 다잡을 일이다.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1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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