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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일본형 '복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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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13 14:55 조회17,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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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복지체계는 1960년대에 들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극)빈곤층의 생계를 돕기 위한 공적부조 제도가 몇 가지 있을 뿐이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의 효시는 1961년부터 실시된 국민개의료보험과 국민개연금보험이었다. 이후 노인, 정신박약자, 모자산부 등을 위한 복지제도가 도입되었고, 70년대 초에는 70세 이상의 노인의료를 무료화하는 ‘노인복지법’과 실업에 대한 사회보장으로서의 ‘고용보험법’ 등이 제정되었다. 자민당 정부는 노인복지법이 실시된 1973년을 ‘복지원년’으로 선언하며, (국가 주도에 의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통한 복지국가 일본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1970년대 동안 국민소득에 대비한 사회보장지출 비율은 꾸준히 상승됐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됐다. 복지원년 선언 직후 발생한 석유위기와 그에 기인한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일본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자, 그를 기화로 자민당 정부는 1979년 일본의 지향점은 유럽형 ‘복지국가’가 아니라 일본형 ‘복지사회’라고 천명했다. 복지제공의 주체는 국가가 아닌 사회(구성원), 즉 개인, 가족, 기업, 지역단체 등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인 및 가족의 자조 노력과 지역사회의 원조를 강조하고 정부의 복지지출 억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일본형 복지사회의 정책 기조는 이렇게 정해졌다. 복지국가 추진정책은 10년도 못가 중단된 것이다.

 

다행히 1980년대의 일본형 복지사회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서구 복지국가들과 비교할 때 이 기간 일본의 소득 불평등은 결코 심하지 않았으며 사회통합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성공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속적인 고성장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높은 고용수준이었다. 일본의 경제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갔다. 게다가 고용 그 자체가 생활보장을 의미하는 종신고용제와 연공임금제라는 일본의 고용체계도 확고했다. ‘총중류사회’라는 일본형 복지사회는 이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당연히 자민당 정부는 사회복지지출의 확대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 있었고, 복지에서의 국가 역할은 축소됐다. 이리하여 80년대 일본의 국민소득 대비 총사회복지지출 비중은 당시 유럽 선진국들 평균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선에 줄곧 머물렀다. 70년대의 상승세가 멈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 정부 부담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노인 및 의료 복지와 연금제도 등에 손질을 가함으로써 국가복지를 감축시켰던 것이다. 1980년 총사회복지지출에서 32.9%를 차지하던 정부 지출의 비중은 1990년 24.4%로 떨어졌다. 총사회복지지출 비중이 13%선에서 유지됐던 것은 민간사회복지지출이 늘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80년대의 일본에서는 시장과 기업 중심의 복지사회가 확립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 일본의 복지 환경은 다시 변화되었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개막되며, 성공적인 복지사회 운영을 가능케 했던 성장과 고용 측면에서의 호조건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1년의 버블붕괴 이후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는 등 장기적인 경기침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이 상황에서 고용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2.1%에 불과하던 실업률은 10년이 지난 2000년엔 그 두 배가 넘는 4.7%까지 올라갔다. 퇴출 또는 파산 기업의 수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남아있는 기업들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며 종신고용제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실직자와 더불어 비정규직도 급증하게 됐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빈곤층의 확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양산되며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갔다.

 

2000년대에 들어 이 같은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2001년에 출범한 고이즈미 정부가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성장전략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인 까닭이었다. 민영화, 규제완화, 시장자유화, 재정지출 감소 등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고도성장이 가능하며, 그래야 높은 수준의 고용창출 및 유지를 전제로 하는 일본형 복지사회가 작동된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신념은 8년의 집권 기간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80년대식의 복지사회 복원을 추동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이 기간 ‘격차사회’는 오히려 공고화되었다. 지난 회에서 언급한대로 2000년대 말에 가서는 실업률이 5.7%까지 높아졌고, 1985년 16.4%에 불과했던 비정규직 비율은 34%를 넘어섰다. 2005년도의 지니계수 비교를 통해 본 일본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OECD 회원국 중 최악에 가까운 것이었고, 상대빈곤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일본형 복지사회의 기반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국가복지의 확대 경향이 포착된 시점은 1990년대 중반 경이었다. 그 무렵부터 일본의 사회보장지출이 급격히 증대되었고, 그 중 국가 부담 비중도 높아졌다. 그리하여 2006년의 국민소득 대비 총사회보장지출 비율은 24.4%까지 올라갔다. 이는 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서는 낮지만 미국 보다는 높고 영국에 버금갈 정도의 수준이었다. 정부 지출 비중 역시 2007년에는 30.9%까지 증대되었다.

자민당 정부는 분명히 성장-고용-분배로 이어지는 일본형 복지사회의 작동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국가복지의 확대를 통해 사회통합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당 정부의 복지국가 구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될 만 했다. 과연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복지사회에서 복지국가로 그 지향점을 재조정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 회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서남통신.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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