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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거짓과 진실의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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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18 10:04 조회17,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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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도덕주의자에게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완벽한 진실은 또한 낯선 일이다. 나쁜 성적표를 들고 온 자식에게 씁쓸한 표정을 숨기며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달갑지 않은 이에게도 "조만간 뵙지요"라고 말한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거짓말은 아주 기본적인 경제행위에 속한다. 사람은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거짓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긴장과 거짓말

인센티브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설득이자 유혹이다. 그 무엇은 거짓말일 수도 있고 정직한 고백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사건은 거짓말을 줄이는 인센티브에 관한 이야기다. 워싱턴의 아버지는 아끼는 벚나무를 자른 아들의 고백에 비난 대신 칭찬을 해준다. 정직을 격려하는 보상이다. 워싱턴의 벚나무 이야기는 전기를 쓴 작가의 각색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 전 세계 어린이에게 워싱턴의 이야기는 도덕적ㆍ사회적 인센티브가 되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좀 더 계산적이고 경제적이다. 얻을 수 있는 대가가 적절하다면, 또는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적절히 절약할 수 있다면, 누구든 거짓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거짓말을 할까? <괴짜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워싱턴의 사무실들에 베이글 빵 상자를 놓고 몇 년간 무인판매를 실시한 결과 판매대금 회수율은 87% 수준까지 하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은 베이글을 판매한 경우다. 거짓말에 대한 인센티브가 커진다면 정직한 행동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최근 군의 발표가 다시 논란이 되었다. 합동참모본부는 9일 북한이 서해에서 해안포 100여 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합참은 포탄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떨어졌다는 초병의 보고를 묵살했다가 하루 만에 다시 말을 번복했다. 이에 따라 최초에 거짓 발표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군대 경험을 한 이들은 잘 알겠지만, 군대가 수도원 같은 곳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센티브 구조를 생각해보면, 군이 반듯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거나 비분강개할 필요가 없다. 전쟁의 긴장과 거짓말 사이에는 분명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평화의 바다에서는 인센티브가 비교적 불분명하겠지만, 긴장의 바다에는 인센티브가 확실해질 것이다.

국방 당국은 NLL 너머 남쪽으로 포탄이 떨어지면 즉각 응사하겠다고 공언했고 심지어 북한 해안포를 공격하겠다는 계획도 흘러나온 바 있다. 또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고 동ㆍ서해에서 잇따라 대규모 훈련을 벌였다. 포탄 몇 발이 넘어왔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커졌다. 얼마 안 되는 포탄 거리의 차이에도 대단한 인센티브가 걸리게 되었다.

천안함 침몰 당시 군의 초기대응 혼란도 인센티브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의 감사보고에만 한정하더라도, 수많은 거짓말이 있었다. 사건 발생시각을 30분 늦춰 보고했으며, TOD 동영상도 편집해 공개했고, 위기관리반 소집에 대해서도 허위 보고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거짓말에는 초동 대처 미흡과 경계 소홀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인센티브가 작용한 것이다.

개각으로 오류 수정 어려워져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은 중간발표에서 북한의 소형 잠수함 침투와 '1번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을 기정사실화했다. 이후 정부는 발맞추어 북한을 향한 강경한 대책을 쏟아냈다. 합동조사단의 중간발표가 마치 최종발표처럼 제시되었지만, 그 발표가 '결정적' 지위를 얻지는 못했다. 유엔에서도 천안함을 공격한 주체를 확정하지 않았고, 증거에 대해서는 과학계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각에서 외교ㆍ국방ㆍ통일부 장관이 유임되었다.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오류의 조각들을 수정하기는 어렵게 되고 말았다. 사람은 정직하지만 거짓도 말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이 너무 확연하면 나쁜 행동을 할 인센티브도 커지는 법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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