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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환경미화원의 ‘씻을 권리’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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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29 23:04 조회17,4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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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쪽방 투기, 위장전입과 위장취업 등 각종 비리와 의혹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산 김태호, 이재훈, 신재민씨가 사퇴했습니다. 청문회 직후 의원들에게 인준 협조를 요청하는 등 물러날 뜻이 없었던 그들이 태도를 바꾼 데는 그대로 갔다간 국민들의 분노와 환멸을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청문회를 지켜본 집권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우리가 쓰레기 처리장이냐”고 목청을 높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첫 조각 때 ‘고소영’ 내각 파동을 겪고도 이번 사태를 빚은 것은 이 정권과 국민 사이의 거리가 그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청와대가 세 사람의 사퇴를 수용한 것이 그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면 좋으련만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를 그대로 둔 것도 그렇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전한 대통령의 사퇴 수용의 변도 그렇습니다. 이 대통령은 “모두 능력과 경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아쉽다”며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미흡하다고 판단한 게 아니라,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니 대통령의 눈높이는 아직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처지를 살피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을 키우지 않고는 이 눈높이의 차이를 메우기 어렵습니다.

 

청문회 뒤 ‘우리가 쓰레기 처리장이냐’고 말한 한나라당 의원들도 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처지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5일부터 27일까지 한국인권재단 주최로 열렸던 ‘제주인권회의’에선 바로 그 환경미화원들의 ‘씻을 권리’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서울 송파구청에서 생활쓰레기 등의 처리를 민간에 위탁한 뒤 위탁회사에 고용된 미화원들은 차고지 컨테이너박스에서 쉽니다. 컨테이너박스에는 샤워시설 대신 달랑 수도꼭지 하나만 있어 더러워진 몸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습니다. 더러운 냄새나는 몸으론 식당에 갈 수도 없기에 일이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진 쫄쫄 굶기 일쑤입니다. 이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연구실장은 씻지 못한 미화원들의 얼굴에는 공중화장실 수준의 세균들이 묻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도 송파구청 미화원들의 처지는 나은 편입니다. 송파시민연대 등 이 지역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이 구청에 새로 짓는 폐기물종합처리시설 안에 미화원들을 위한 사무실과 샤워시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으니까요. 서울시내 다른 지역의 사정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합니다. 종로구의 경우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한다며 컨테이너박스를 치우라고 해 민간위탁회사 미화원들이 쉴 수 있는 장소조차 없는 형편이랍니다. 사정이 이렇게 열악하게 된 것은 대부분의 구청이 쓰레기 처리 비용을 줄이고 더 나은 서비스를 한다며 민간위탁을 한 탓입니다. 그렇지만 이 정권에선 그 누구도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훈씨는 노후를 위해서라며 쪽방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구입한 쪽방에 살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그 쪽방을 판 돈으론 같은 지역에 그만한 방조차 구할 수 없어 더 멀리 떠밀려갔을 것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주택 수가 늘어났음에도 무주택자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것도 이재훈씨 같은 사람들의 투기 때문입니다. 투기세력에 밀린 서민들은 쪽방으로 지하방으로 옥탑방으로 쫓겨갔지만, 정권은 이들의 주거환경권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서민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공감의 정치’를 복원하지 않고선 ‘공정한 사회’를 아무리 외쳐도 그것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것입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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