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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일본 복지 증세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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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13 22:29 조회17,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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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하토야마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구상은 비현실적이라는 인식 하에 우선 현행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리고자 했던 간 정부는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낭패를 보았다. 소비세인상론에 발끈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게 대패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간 수상과 그 각료들은 국민 다수가 자신들의 소비세 인상 공약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이 염원하는 복지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확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정도의 ‘작은 정부’를 갖고 일본이 복지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국민부담률은 정부가 한 해에 거둬들이는 세금에 건강보험료나 연금 등 각종 명목의 사회보장분담금을 합한 총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말하자면 국민의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부담률을 합한 개념으로서, 이것은 정부의 재정 크기를 가늠케 하는 좋은 지표이다. 2010년 3월 OECD가 발표한 예상치에 의하면 일본의 2010년도 국민부담률은 27.9%이다. 이는 국민 개개인이 누리는 복지의 양과 질 역시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소위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대표적 국가인 미국(24.3%)이나 OECD 최악의 복지후진국인 한국(25.2%)보다는 물론 높지만, 국민 누구에게나 보편적 복지를 제공함을 목표로 하는 스웨덴(49.1%), 덴마크(47.5%), 오스트리아(43.4%), 이탈리아(42.8%), 핀란드(42.4%), 프랑스(41.5%), 독일(39.6%) 등의 ‘사민주의’ 혹은 ‘조합주의’ 복지체제를 갖춘 국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이 정도로 ‘적게 걷는,’ 따라서 ‘적게 쓰는’ 일본 정부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해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간 정부가 증세를 시도한 것은 충분히 타당한 행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복지국가 건설 문제가 아닐지라도) 일본은 심각한 소자․고령화 문제로 지속적인 복지수요 증가가 불가피한 데다 재정적자 문제 또한 심상치 않은 나라가 아니던가. 사실 2000년대 후반에 가서는 (민주당으로부터 신자유주의 정당이라고 비판받던) 자민당 정부마저도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던 터였다. 당시 자민당 정부는 소비세 인상은 물론 개인소득세의 증세까지도 포함하는 대대적인 세제 개혁 방침을 굳히고 있었다. 같은 시기, 증세에 대한 진보정당들의 태도는 당연히 더욱 적극적이었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복지예산증대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고소득자 및 기업으로부터 더욱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것을 요구했다.

 

참의원 선거 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다수의 일본 국민 역시 국가복지의 확대는 물론 재정 파탄의 방지를 위해서도 증세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상황에서, 즉 자민당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야당들이 각기 나름의 증세론을 펼치고 있을뿐더러 국민의 다수도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 수상이 소비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공약은 상기한대로 민주당의 대패를 초래했다.

 

이것이 바로 증세의 딜레마이다. 시민들 대다수는 복지국가를 원하고 그를 위한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막상 실제로 자신들이 세금을 더 내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에는 저항한다. 일반 근로자들은 고소득 전문직의 세금이나 기업 법인세를 올리라고 할 뿐 자신들의 소득세 인상에는 한사코 반대한다. 고소득자나 기업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 결국 정부는 직접세 대신 간접세를 올리는 방안을 택하곤 한다. 그러나 간접세의 인상도 많은 경우 조세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곤 한다. 요컨대, 모두가 돈을 더 걷을 필요가 있다고는 말하지만 아무도 스스로 내겠다고 나서지는 않는 상황이 거듭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딜레마는 복지 증세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공공재’(public good)의 창출 과정에서 발생한다. 누구나 공공재의 창출과 유지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에 들어가는 비용 분담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소위 ‘합리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행위는 대체로 (불확실성이 높은) 장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 이해득실 정도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같은 딜레마 상황을 해소해주기 위함이다. 그래야 시민들 모두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가는 공공재의 제공이 원활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마련하고 거기에서 대립하는 사회세력들 간에 합의점을 도출하도록 하여 그에 기초한 사회 및 경제 정책 등을 수립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일본의 미래 역시 과연 일본 정부가 이러한 해법을 채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행이도 현재로선 일본 정부에게 그러한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서남통신.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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