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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한국영화의 아시아감각;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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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13 22:32 조회17,9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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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영화의 관객 반응에 대해 궁금한 작품이 하나 생겼다.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 나는 지난 9월 14일 난생 처음 시사회라는 데를 갔다. 이 영화의 생산과정을 지근(至近)에서 귀동냥해온지라 어찌 만들었는지 궁금하던 것이다. 원래 제목 <아세아브라더즈>가 시사하듯이, 이 영화는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도 아시아를 의식한다. 주인공 방태식이 열쇠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 연줄과 단절적이다. 소문난 지방 출신이 아니라 지연도 없고 학력별무니 학연도 없고 방씨는 그나마 소수라 혈연도 없는 셈인데 외모까지 받쳐주지 못하니, 취직에 유리한 조건은 어느 하나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완벽한 하위자(subaltern)다. 방태식 같은 자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체가 이 영화의 반로맨스(anti-romance) 취향을 강렬하게 드러내거니와, 그와 아시아는 어떻게 만나는가?

 

그 접점이 우리 사회의 현안 중의 현안인 청년실업문제다. 방태식은 자신의 외모가 동남아시아사람들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동남아인으로 위장하기로 작정한 바, 사실 이 대목은 좀 걸린다. 노동자로 취직하는 데 국적까지 위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희극적 과장으로 넘어가자. 취직 이후 국적변조가 들통나지 않도록 한국에서 가장 낯선 나라를 택해 부탄인으로 변신한다. 이 대목도 또 걸리기는 한다. 부탄은 동남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웃 아시아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지 탓으로 돌릴 밖에 없겠다. 하여튼 방태식은 마침내 부탄인 방가로 변신, 의자공장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취직 때문에 존재 전이한 그가 공장에서 진짜 아시아 노동자들과 해후함으로써 정체성의 위기는 대발(大發)한다. 그런데 바로 이 위기 속에서 이 영화의 소통력이 발생한다.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보장해온 기회의 균등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는 현실이 관객들의 마음 속 코드를 툭툭 건드리곤 하기 때문이다.

 

구성의 초점은 한몫 잡아 귀향하여 인간답게 살고 싶은 한국인 방태식과, 온갖 차별에 시달리며 착취당하는 아시아 노동자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부탄인 방가 사이의 갈등이다. 이 요약이 상기시키듯이, 영화는 대학생 또는 지식인 들이 노동자로 위장, 공장에 속속 들어갔던 저 ‘불의 시대’ 1980년대의 운동을 패러디하고 있다. 말하자면 민중극장의 21세기 버전이다. 새 버전이 아시아와 연대하고 있는 점이야말로 진화다. 겉은 부탄인이되 속은 한국인이라는 이중성 사이에서 찢긴 부탄-한국 노동자 방가는 한국사회의 하부로 편입된 아시아 노동자들과 생활하면서 오히려 노동자 정체성에 다가감으로써 자기 안의 균열을 극복하기에 이르니 마침내 한국인임을 노출하는 용기 속에 아시아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길을 선택한다. 두 정체성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방태식이 아시아 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으로 마감되는 이 영화는 소극(笑劇)으로 감싼 이상주의의 합창이다. 이 점에서 영화의 말미가 외국인노동자노래경연대회라는 점 또한 시사적이다. 그리고 실제 여기서 불려진 노래들이 짠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 중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가 거의 결여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는 동북아의 주변부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동남아는 일종의 환유다. 중동이든 서남아시아든 중앙아시아든 또는 동북아시아든 그 어디에서 왔건 한국사회를 밑에서 받치는 하위자, 아시아노동자의 환유가 바로 동남아다. 비단 한국 바깥만 가리키지 않는다. 더 나아가 방태식 같은 한국사회의 하위자까지도 포괄하는 환유다. 요컨대 이 영화는 겉은 희극이지만 속은 민중극인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몽골을 몽고(蒙古)라고 지칭한 것은 옥의 티다. 알다시피 중국이 주변민족이름에 뜻이 좋지 않은 한자를 쓴 예의 하나인데, 당연히 몽골로 불러야 한다. 베트남 여성노동자의 설정도 왠지 궁색하다. 더러더러 갈등이 손쉬운 해결로 떨어진 것도 그렇다. 저예산 영화로서는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좀 더 긴장을 견뎠어야 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아울러 방태식이 겪을 존재론적 위기가 더 내재적으로 다뤄졌다면 좋았겠다. 사실 요즘 너도나도 ‘국경넘기(trans-national)’를 쉽게 이야기하는데 방태식만큼 그 가능성을 따져볼 호재는 없다. 요컨대 전체적으로는 웃음이 감동을 이기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하위자문제를 아시아감각으로 다시 쓴 이 영화는 이 문제에 관한 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농촌과 공장에서 생활하는 아시아는 이제 한국사회, 그 하층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지적 태만 아니 도덕적 태만이라는 점을 강력히 환기하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계몽적이다. 다행히 추석 직후 개봉된 이 저예산 영화가 선전중이라니 고맙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아시아감각도 더욱 깊어지고 더욱 넓어져, 아시아와 화해하는 작업이 한국/한반도를 쇄신하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국민적 일반교양으로 고양된다면 작히나 좋으랴!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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