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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수렁에 빠진 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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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2-10 17:34 조회18,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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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현대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을 물고 늘어졌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비상장사와 합병해 편법 상속을 꾀한다고 공격했다.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정했지만, 현대차는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현대그룹 자금의 불투명성 문제로 채권단 내부의 입장도 갈라졌다고 한다.

현대건설은 매각과정의 수렁 속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회생한 기업이 투기적 자본과 재벌체제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형국이다. 흔히들 지나친 신자유주의의 질주를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정작 신자유주의 논리는 온데 간데 없다. 경쟁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약하고 재벌체제의 독점 강화는 쉽게 용납된다.

사회적 자원 배분의 비효율

재벌의 현대건설 인수를 용인할 수 있는 것은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가 작용할 때이다. '범위의 경제'는 한 기업이 여러 생산물을 결합해 생산했을 때 각각의 기업이 따로 생산하는 것보다 평균비용이 낮아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비용 절감은 기존 제품과의 연관성이 높은 산업에 다각화할 때 가능하다. 경영권 방어나 상속이 목적인 재벌의 기업인수는 오히려 비용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시장구조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재벌의 비관련 부문 인수합병은 독점성을 강화해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경쟁은 효율적이고 독점은 비효율적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독점체제에서는 경쟁체제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더 적은 생산량을 공급한다. 독점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사회 후생의 손실을 가져온다.

건설업의 경쟁력 측면에서도 현대건설을 재벌이 가져가야 할 근거는 희박하다. 이미 현대건설은 재벌총수 없이도 좋은 경영실적을 내왔다. 시공능력 국내 1위를 지키고 있고 매년 5,000억~6,000억원 흑자를 냈다. 전제적인 총수가 없으므로 비자금 조성이나 회계장부 조작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대건설은 이제 또 다시 재벌총수 밑으로 들어가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현대건설 매각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현대그룹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현대건설과 현대그룹 계열사 주가는 모두 크게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현대건설 내부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담보 제공 등의 부담을 져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해도 인수 부담 때문에 자동차부문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우든 현대건설의 기업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무리한 매각이 진행되는 것은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가 매각을 서두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정부의 잘못을 돌아보게 된다. 문제는 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은행을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에 서둘러 매각한 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책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정책금융공사도 산업과 시장에 대한 정책방향 없이 이익을 좇아 표류하고 있다.

위험한 '재벌 사회주의' 우려

한국처럼 사회적 자원이 재벌그룹에 쉽게 내던져지는 나라도 드물다. 신자유주의 민영화의 챔피언이라는 영국도 국가 독점을 사적 경쟁으로 대체한다는 모양새를 갖췄다. 빅뱅식의 급진적 민영화를 추진한 러시아도 최초 단계에는 대중적 사유화의 형식을 취했다. 어쩌면 한국은 1930년대 초의 미국 상황에 더 흡사한 것 같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수 금융가가 지배하는 '사적 사회주의(private socialism)'의 폐해를 지적했다.

우리 상황에 대입하면 '재벌 사회주의'를 걱정할 만하다. 그래서 소수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경제를 만들자던 루스벨트의 호소가 새삼스럽다. "나는 정부 사회주의만큼이나 집중화된 사적 권력의 사적 사회주의에 철저하게 반대합니다. 사적 사회주의는 정부 사회주의만큼이나 위험합니다."(1935년 의회에 보낸 루스벨트 서한)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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