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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누가 뭐래도 전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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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2-13 08:19 조회18,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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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정말 전쟁 나는 것 아니에요?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얼마 전 외아들을 군대에 보낸 한 후배가 연평도 사건 이후 남북 양쪽이 전면전이니 전쟁 불사니 외치고 있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말을 보탭니다. “글쎄, 북한이 경기 북부 지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야?”
 

연평도 사건 이래 생각만 해도 끔찍한 전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이나 연인을 군대에 보냈거나 곧 보내야 하는 이들, 입대를 앞두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접경 지역 주민들이 겪는 불안은 말할 수 없습니다.

 

휴전 이래 여러 차례 남북간 무력충돌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북한의 처지와 남북관계가 예전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극도로 취약하지만 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6·15 선언 등 남북 합의를 휴짓조각으로 만들고 북한을 고사시키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벼랑에 몰린 북한이 선택한 카드는 핵 위협 수준을 높이고 국지적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평도 사건은 아무런 대책 없이 북한의 자멸만을 기다려온 이 정권의 대북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최소한 대화 통로라도 열어 충돌을 막을 방안을 논의해야 할 터이지만 우리 정부엔 그런 뜻이 전혀 없는 듯합니다. 중국이 제의한 6자 긴급회의를 거부한 채 미국의 핵항모를 동원한 무력시위와 교전규칙 개정 등 대결의 강도만 높이고 있습니다. 새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추후 도발에 공군의 폭격을 포함하는 자위권 차원의 강력한 응징을 다짐하며 전쟁불사론을 외칠 뿐입니다.

 

하지만 국방장관의 호언이나 무력시위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기엔 역부족입니다. 연평도 사건 당시 청와대와 군 지휘부의 오락가락 행보 때문만은 아닙니다. 연평도에서 자주포가 고장나 있었던 게 예외적인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올 한해만 해도 여러 대의 전투기가 정비 불량 등의 이유로 추락했고 이포보에서 군인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역시 작전에 투입할 보트 4정 가운데 3정이 고장난 탓이었답니다. 우리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맞는다면, 그런 일을 겪고 또다시 연평도 포격을 당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북한은 “교전 확대든 전면전이든 다 준비가 돼 있다”고 으를 정도로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데 우리 군의 준비태세는 이런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태반은 보온병과 포탄도 구별 못해 비웃음을 산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처럼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거나, 자기 자식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군대에 보내지 않은 사람들일 거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리영희 선생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해 통역장교로 전선을 누볐습니다. 그는 자서전 <역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건봉산 전투를 기록하며 기득계층 자제들이 권력을 이용해 후방으로 빠져나간 그 ‘죽음의 계곡’이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로 채워지는 것을 보고 “나라 사랑은 힘없는 자들만이 하는 것인가” 하고 한탄했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라고 다를까요? 전쟁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게 마련입니다.

 

지난 9일 ‘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소속 여성들이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며 시위에 나선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습니다. 수백만명이 희생당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잊은 채 또다시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야만을 요구하는 정권은 남이든 북이든 민족과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받을 것입니다. 한반도가 다시 전장이 되는 일은 이제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1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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