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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자본통제’ 꺼릴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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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29 13:24 조회19,0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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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말미암아 유로존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미국의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요즘 같아선 국제금융시장이 마치 지뢰밭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금융 리스크를 양산해 각국 경제를 오히려 위험에 빠트리는 데 더 능숙한 듯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당시 나라경제의 규모에 비해 최대의 금융거품이 폭발하면서 최악의 경제 붕괴 사태를 맞았던 나라, 가장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던 나라가 바로 아이슬란드다. 그 아이슬란드가 지난달 말 IMF를 졸업했다. 아직 선진국 경제들이 대부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휘청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이슬란드가 위기 극복을 위해 사용한 정책은 시장주의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시장의 낙인효과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채무이행 거부를 선언했으며, 강력한 자본통제를 실시했다. 물론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이렇게 비상한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비시장적인 정책을 추진한 아이슬란드가 에스토니아나 리투아니아처럼 전통적인 IMF 처방을 따른 유럽의 다른 소국들에 비해 훨씬 빨리 위기 극복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또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효과적인 자본통제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틈나는 대로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주장을 하면 동료 경제학자나 정책당국자들로부터 마치 외계인이라도 되는 듯이 무시당하거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슨 급진주의자나 되는 듯이 취급을 받곤 했다. 

하지만 자본통제를 주장하는 것이 시장경제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무역의 강력한 옹호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바그와티 교수는 이미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자본자유화는 무역자유화와 달리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위기를 초래할 위험성만 가중시킨다고 지적하고, IMF와 미국 정부가 앞장서 자본자유화를 내세우는 것은 월가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수많은 계량경제학적 연구는 대부분 자본자유화의 성장촉진 효과를 부정한다. 급격한 자본유입 이후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것은 수없이 반복된 경험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경제학자나 정책당국자들이 자본통제를 꺼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시장경제이론을 맹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자들은 증거를 보고도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이 극소수이길 바랄 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낙인효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단아로 찍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자본통제를 실시한 칠레나 말레이시아의 경우를 보면 이건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이들이 사실은 은근히 미국 혹은 외국자본의 편을 드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최근 위키리크스에 의해 연일 폭로되는 우리나라 여론 주도층의 행태를 보면 그럴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만능주의가 퇴조하는 가운데 학계나 정책당국자들 사이에서 자본통제의 필요성과 효과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IMF도 이제는 자본통제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의 위기 극복에 관해 IMF가 내놓은 보고서는 효과적인 자본통제가 통화정책 성공의 비결이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과거 IMF가 자본통제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이었던가를 상기해보면 이건 정말 큰 변화다.

우리나라도 자본 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1년 사이에 외국환은행에 대한 선물환포지션 한도 제한 및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그리고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탄력세율 부과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조치에 힘입어 은행의 과도한 해외차입 문제는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외국인 채권투자가 급증했고, 최근에는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급격히 이탈하는 등 포트폴리오 투자의 유출입으로 인한 경제불안이 우려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수단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브라질 등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투자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금융안정을 위해 과감한 정책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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