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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살기 좋은 서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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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0-28 15:48 조회20,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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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가 끝났다. 당선자의 공약은 한마디로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약속이 짧은 잔여임기 동안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이를 위해 유념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서울이 바로 지금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하지만, 미래에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울만 살기 좋은 곳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시장과 공무원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거대도시 서울의 존립 또는 번영은 미래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천만의 인구가 생산과 소비 활동을 위해 엄청난 양의 전기와 석유를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시대로의 행진을 가속시킨다. 모두 우리 아이들의 생존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면 서울은 잠시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는 작동 불능의 거대 공룡도시가 될 것이다.


서울은 또한 지역의 희생 위에서 존립하고 번영을 누린다. 서울을 살아있도록 만드는 전기, 석유, 식량, 물은 모두 서울 바깥에서 온다. 영광, 울진, 월성, 고리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보내주는 전기가 없으면 서울은 암흑 속 유령도시가 된다. 그곳의 원전은 바로 서울을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반면에 그곳 주민들은 항상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의 위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전임 서울시장은 서울을 바꾸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사업을 통해서 외모를 꽤 변화시켰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자기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른다. 그로 인해 서울시의 빚만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도 선거전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민들에게 발언하고 참여할 기회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의 희생 위에서는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이 나올 수 없다. 지금은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삶, 다른 지역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풍성한 삶이 어찌 살기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겉으로 풍족해도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은 즐거운 삶은 아니다.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모든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시민들도 시장만 바라보지 말고 서울의 주인으로서 아이들의 미래와 다른 지역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서울을 바꾸어 나가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기와 석유 소비를 줄이는 일에 동참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지역의 시민들과 연대해 서울과 지역을 함께 자족하고 공생하는 곳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벌여나가야 한다. 원전지역 주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는 일도 펼쳐야 한다. 몇몇 구에서 벌어지는 도시텃밭 운동도 시민들이 주도해서 서울 전역에 확산해야 한다.

 

며칠 전 나는 1년째 고장난 채 방치되어 있는 난지도의 소형 풍력발전기 대신 시민들만의 힘으로 크고 멋진 풍력발전기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였고, 참여하겠다고 했다. 서울시장의 임무는 이와 같은 시민들의 제안을 귀담아듣고 시민들의 힘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솟구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네거티브만 활개쳤지만, 이제부터는 서울을 진정으로 좋은 삶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포지티브가 곳곳에서 솟아나도록 해야 한다. 당선자는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현재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일하기 바란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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