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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보수의 쇄신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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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1-22 11:14 조회18,4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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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는 이명박 정부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주장이 등장했고, 주요 선거가 진행될 내년에는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더 본격화될 것이다.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관심은 이명박 정부 이후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출현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많지 않다. 진보개혁세력들로서는 태생이 잘못된 정부의 당연한 말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간단한 변화가 아니다. 당시 진보개혁세력 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신보수주의로 규정하고 일본의 자민당 장기집권 시절과 같은 보수우위 시대가 개막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현재의 사태는 진보개혁세력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는 것인데 이들도 유권자의 선택이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은 원인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보수세력에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분적인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탄핵으로 위기에 몰렸지만 기사회생했던 2004년 총선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보수의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 혹은 대통령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들은 자신이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자신에게 있는데도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처럼 이야기하거나 심지어 충고도 하는 식의 행태가 ‘유체이탈화법’이라고 풍자되고 있는데, 이는 보수언론들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보수의 위기이다. 보수가 수구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종종 합리적 보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보수라는 가치 자체가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필수적인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 한국사회의 보수는 수구에 가깝다. 수구의 핵심은 분단체제에서 만들어진 기득권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 사고와 행태가 민주화를 경험한 현재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특히 모든 문제가 북한 그리고 그에 연계된 세력에 의해 발생된다는 논리에 안주하는 것이 보수에게 자신에 대한 성찰 능력을 상실케 했다. 선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북풍공세는 둘째 치더라도, 분명한 증거도 없이 농협 전산망 장애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는 등 북한이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나마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시점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체제경쟁이 끝난 현재에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그 결과가 한편에서는 북한이 곧 붕괴할 듯 호들갑을 떨다가도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을 못하는 것이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만드는 자가당착이다.

 

따라서 사람 몇을 바꾸고, 당장 국민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몇 가지 내놓는다고 보수가 제 자리를 잡고, 한나라당이 쇄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냉전적 사고의 관성과 단절할 때만 새로운 길이 생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더 많은 권력자원을 갖고 있는 보수의 위기는 한국사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에 속칭 ‘구린’ 모습이 너무 많은 현실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더 큰 좌절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구린 모습은 대부분 보수의 냉전수구적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보수의 쇄신은 선진화를 내걸고 등장한 정부가 왜 독재시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서술을 강요하고, 내곡동 사건과 같이 개발시대 부동산투기의 전형적 사례가 발생되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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