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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허황한 ‘공생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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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09 11:55 조회18,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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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화두는 공생발전이다. 이전부터 내세우던 동반성장이나 상생이나 다 매한가지 얘기다. 참 좋은 생각이다. 문제는 방법론이 틀렸다는 것이다. 힘 있는 자들의 배려와 양보, 가진 자들의 기부와 나눔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제도적인 해법을 대신할 수 없다. 자발적 행동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릇된 방법론은 진정한 해법을 외면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바로 그것이다.

 

재벌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중소상인 사이에 어떻게 하면 상생과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한다. 동반성장위원회라는 민간기구를 통해서 동반성장 정책을 만들고 이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정책은 실효성이 별로 없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재벌들이 일시적으로 시늉은 하겠지만 틈만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뀔 것이 뻔하다. 멀쩡한 법도 제대로 안 지키는 게 우리나라 재벌 아닌가?


일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 관한 거창한 토론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정부의 고위관리가 “상생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벌총수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게 바로 이명박 정부 상생정책의 본질이라는 것을. 바로 이런 걸 보고 연목구어라고 한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법과 제도를 통해서 이윤추구의 방식을 제한함으로써 좋은 경쟁을 유도하고 불공정 경쟁이나 착취를 방지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분투하고 있는 점은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위원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나서고 정부가 힘을 실어서 나눔과 기부를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정몽준과 안철수 등 가진 자들의 기부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과거 재벌총수들이 자기 돈이 아닌 기업 돈으로, 더군다나 비난여론을 모면하기 위해서 억지춘향으로 기부를 하던 것에 비하면 이들의 기부는 훨씬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본연의 사명인 재분배를 소홀히 하면서 기부를 강조하는 흐름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아무리 액수가 커 보여도 몇몇 개인이 기부하는 것으로 재분배가 제대로 될 수는 없다. 재분배는 세금과 정부지출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정부는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 등을 깎는 부자감세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재분배에 역행하는 정책을 실시해왔다. 그러면서 나눔과 기부를 고취하는 것은 위선이고 위장이다. 부자감세로 미국 경제의 극심한 불평등과 재정적자를 초래했으며 거짓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반인도주의 범죄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나눔과 기부의 전도사였다.

 

최근 워런 버핏을 위시한 미국 부자들의 증세 운동이 화제다. 백만장자들이 길거리에서 자신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가라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부자들의 증세운동은 사실 독일, 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 일고 있다. 빌 게이츠 등이 회원으로 있는 ‘책임적 부’라는 조직에서도 부자증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기부를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사실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기부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기부가 결코 세금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부자들이 기부를 통해 세금공제를 받는다면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정부가 아닌 극소수의 부자들이 결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한 독일 부자의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공생발전론이 허황되게 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미 FTA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의 수혜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미국에 이미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들이 수혜자요, 농민과 중소상인 그리고 제약산업 등이 피해자다. 가진 자에게 더 주고 없는 자를 더 압박하는 정책, 아무리 생각해도 공생발전과는 반대로 가는 일이다. 나아가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자유화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몇 해 전에 조순 전 부총리는 한국경제학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 FTA 이후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IMF 효과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의 변모를 상상하면 될 것으로 본다. 신자유주의의 여러 가지 효과, 이를테면 양극화, 작은 정부, 이에 따른 정부 역할의 축소, 민영화, 기업 M&A(인수·합병) 증가 등이 이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 한·미 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되었단다. 대책을 차분히 생각할 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벌개혁과 부자증세만큼은 반드시 해내야 그나마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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