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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국회의원 교육헌장이 필요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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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01 11:41 조회18,2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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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학교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40~50대의 상당수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의 첫 두세 구절을 외우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의 한국 정치판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 교육 헌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국회의원은 국리민복을 증진하기 위해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국민대표다.'이렇듯 권위주의 시대의 황당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이 국민대표인지, 지역발전을 위해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가진 중앙에 파견한 지역대표인지를 유권자도, 언론도, 국회의원 자신도 다소 헷갈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도지사, 시장, 구청장, 구의원과 달리 양극화, 일자리, 조세재정, 외교, 안보, 통일 등 국가적, 국민적 사안을 해결하라는 소임을 부여받고 있는 국민대표다. 선거구는 국회의원 후보가 국민대표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유권자들이 밀착 검증하기 위해 설정한 구획에 불과하다. 지근거리에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들어보고, 손도 만져보고, 대화도 나눠보고, 욕도 좀 먹여보고, 평소 행실도 알아보라고... 그래서 '소통령' 소리를 듣는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일 몇 달 전에 서울시내에 반드시 거주해야 하지만, 국회의원 후보는 주소지를 변경하지 않고도 우리나라 아무 곳에서나 출마할 수 있다. 주소지를 선거구내로 옮기는 이유는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을 선호하는 선거구민의 정서를 정면 거스르지 않고, 자신이 자신을 찍기 위해서 일뿐이다.

 

국회의원의 역할에 대한 착각이 만연하게 된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첫째, 국회의원의 5분의4가 지역구 의원이고, 그나마 국가적 사안을 깊이 연구, 고민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후보에게 지역 발전(개발) 방안을 주로 캐묻는 언론의 착각도 일조 한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장(의원) 선거의 역사가 짧고, 지역 현안을 처리하는 권능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도로, 철도, 공항, 공단 등 주요 국책 사업의 향배에 따라 지역민의 자산가치와 운명이 크게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적 성격이 퇴조 내지 퇴화되면서 한국 정치의 국가적 현안 해결 능력은 거의 재앙 수준이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 최대의 현안은 양극화, 산업·고용, 통일 문제 등이다. 이 현안들은 여간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하나같이 원인과 결과, 주된 원인과 부차적 원인이 난마처럼 얽히고설켜있다. 정확한 원인 진단도 쉽지 않다. 중장기적 해결 방향을 정립하고 해결의 급소를 찾아내는 것은 더 어렵다. 설사 찾아냈다 하더라도 기득권자들의 반발과 다수의 무관심을 뚫고 이를 구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총선과 대선 시기에 유권자들과 언론들은 후보자들에 대해 핵심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견해를 주로 물어야 한다.

 

사실 국회의원의 힘의 원천은 입법권이 아니라, 국민들 대표해 정부를 상대로 뭐든 물을 수 있는 권능이다. 1960년대 사실상 초선, 재선 의원에 불과했던 김대중이 군계일학적인 정치인으로 각인 된 계기는 날카롭고도 의미 있는 대정부 질문이었다. 김대중은 당시 관행이던 두루뭉술한 답변을 초래하는 일장연설식 질문이 아니라 단문단답식 질문을 도입했다. 누구든지 정보(제보)와 강단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비리 폭로성 질문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향도하고 잘못된 관행의 급소를 찌르는 질문을 주로 했던 것이다. 노무현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도 1988년 5공비리 청문회에서 한 날카로운 질문 때문이었다. 유권자와 언론의 힘의 원천도 동일하다. 날카롭고 의미있는 질문이다. 빛이 프리즘(분광기)을 통해 일곱 가지 색깔로 나눠지듯이 좋은 국민대표감은 국가적 난제에 대한 날카롭고 연쇄적인 질문을 통해 밝혀진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한국일보. 201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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