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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공천의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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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2-10 18:56 조회18,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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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기간이 개시됐다. 양대 정당은 새 이름을 내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다른 소수 정당도 공천 준비에 부산하다. 선거의 계절이 시작됐음을 실감할 수 있다.

 

공천은 정당이라는 각 팀에서 총선이라는 싸움에 나갈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이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거슬리면 경기에 비유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나 형식으로나 싸움은 싸움이다. 그러고 보면 선거라는 정치적 싸움은 운동경기와 아주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선거에 비하면 스포츠는 가치중립적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둘 다 승리가 목적이다. 오직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정당의 공천은 자체적으로는 점검이며 선발 작업이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검증이며 예비선거의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정당의 일부 지지자들은 국민경선을 통해 실제로 공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예비후보자들도 공천 경쟁을 결승전에 오르기 위한 예선으로 여기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공천은 정당의 집안일이지 일반 유권자가 간섭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특정 정당의 적극적 지지자라면 잠재적 당원으로서 관심을 가질 권한 정도는 있겠다. 정당으로서도 그런 지지자의 한 표를 현실의 투표함에 집어 넣게 하려면 눈치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에 흔히 말하는 부동층이나 경쟁 정당 지지자들을 설득해 마음을 바꾸게 하는 데 효과적인 인물을 찾는 작업으로서의 공천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결국 공천이란 자기 정당과 지지자들의 내부적 결속을 다지는 데에만 의미를 둘 수밖에 없는가. 정당 공천의 공공성은 그 범위 내에서만 유효한가.

 

그렇지는 않다. 공천의 의미와 그 결과의 순기능 및 반작용은 당해 정당과 지지자 그룹의 울타리를 넘어 국가 전체와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선거라는 싸움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승자라 하더라도 다음 선거 때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는 점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의 선수권전에서 결승전이 끝나더라도 다음 시즌이 계속되듯, 선거의 승패가 결정되더라도 패자와 그가 속한 당이 존속해야 정치도 소멸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싸움에서 승리 외에 최소한의 공동 목표가 전제돼야 한다. 그것은 개략적으로 표현하면, 상대방을 죽여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장점의 비교우위로 얻는 승리 같은 것이다. 더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선거 결과에 서로 승복할 것을 공동의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선거 이후에 최소한의 국민적 통합이라도 이루면서, 그 테두리 내에서 다시 정치라는 이름의 싸움을 계속할 수 있다.

 

만약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 오고 있는 일이니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선거의 목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에만 둔다면, 선거전도 상대방의 흠집을 찾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자 확정 선언이 있고난 이후에도, 패자는 승복은커녕 선거 이후의 싸움으로 승자를 죽이려 든다. 그렇게 싸움을 위한 싸움은 반복된다.

 

따라서 선거전에서 정당의 목표는 이중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이중적이란 이율배반이 아니라 이원적이란 의미다. 우선 일차적 목표는 자기 정당 후보 승리다. 나아가 이차적 목표는 싸움이 끝난 뒤의 공정한 태도다. 승자는 겸손하게 패자를 수용하고, 패자는 승복하며 승자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각 정당과 지지자들의 일차적 목표는 서로 상반되더라도, 이차적 목표는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바로 어떤 승리를 목표로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당은 공천할 때 그러한 공동의 목적이 내포된 승리를 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를 골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은 특정 정당과 지지자들 내부의 일만이 아닌 것이다. 누구든지 어느 정당의 공천 과정을 감시하며 간섭할 수 있는 것이다. NGO 역할의 필요성과 정당성도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 유의하면, 정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조금 나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차병직 변호사
(한국일보. 201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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