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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예술가 - 세이머스 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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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07 14:50 조회20,9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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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분노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바위에 맞선 그의 고집을,
풋사과에서 끄집어낸 물질 같은 그의 강압을

 

짖는 자기 모습을 보고
짖어대는 개처럼 존재하는 그의 방식을,
통용되는 것을 통용되었던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에 대한 그의 증오를—
감사나 감탄을 기대하는 천박함,
그것들은 그에게서 도둑질하는 것을 의미하니까.

 

알고 있는 것을 행했기 때문에
그의 용기가 변치 않고 견고해져갔던 방식을,
사과 뒤와 산 뒤의
채색되지 않은 공간을 굴러가는
내던져진 금속공 같은 그의 이마를.

 

첫 시집을 냈을 때는 겁도 없이 시집 표지에 이렇게 썼어요. "친구, 정말 끝까지 가보자. 우리가 비록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할지라도." 그런데 지금이라면 그렇게 못 쓸 것 같습니다. 끝까지 가기 위해서 단순한 열정 말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 지 조금씩 배워갑니다. 분노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거대한 바위에 맞설 만한 집요함이 있어야 해요. 풋사과처럼 시고 떫은 그 맛 그대로 치장되지 않은 정직함도 있어야 하고요. 이 사회에서는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이 감사나 찬사는커녕 봉변과 위기를 겪는 일이 더 잦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 서늘한 마음으로 묻습니다. 우리,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러다 얼마 전 보석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송경동 시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희망을 갖습니다.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1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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