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당신 생각 - 김태형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진은영] 당신 생각 - 김태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08 14:25 조회25,307회 댓글0건

본문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시인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걸까요? 시에는 당신에 대해 생각한 내용은 있지 않고 간절함만 있어요. 시가 짧아서 이야기 못했나? 시가 지금의 열 배가 되었어도, 필경 하고 넘어가야 할 그 얘기가 무언지 들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당신 생각을 했어요, 하고 있어요, 내내 하게 될 거예요. 이 말의 되풀이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롤랑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런 것. "매혹을 묘사한다는 것은, 결국 '난 매혹되었어'라는 말을 초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금이 간 레코드마냥 그 결정적인 말밖에 되풀이 할 수 없는 언어의 맨 마지막에 이르면…"('사랑의 단상') 시인의 시집을 펼치니 김명인 시인의 시 한 줄이 제사(題辭)로 적혀 있습니다.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침묵'). 바로 이런 거죠. 마음 어디께 소용돌이로 남아 나를 고요한 반복 속으로 휘몰아가는 당신 생각.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12. 3. 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