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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50대의 초라해진 정치적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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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27 15:58 조회16,9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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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가장 놀라운 일로 여겨진 것은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89.9%의 50대 투표율이었다. 언론사들은 이와 관련한 보도를 숱하게 쏟아냈고, 그 과정에서 “카톡 하는 50대” “50대의 불안” 등이 대선 이해의 열쇳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달 중순 중앙선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대선의 50대 투표율은 82.0%였다고 밝혔다.


출구조사와 실제 투표율 사이에 8%포인트가량의 오차가 있었던 것인데, 총선이나 지방선거보다 예측이 쉬운 대선에서, 더구나 표본이 8만6000명이나 되는 조사에서 이런 오차가 발생했으니 여론조사기관으로서는 문 닫을 만한 일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출구조사에 참여한 기관들이 폐업은 차치하고 오류의 원인을 밝히려 노력한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다.

언론사들도 매한가지다. 대선 직후 쏟아진 보도들은 일종의 가짜 사건에서 비롯한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오류의 원천을 규명하고 선관위 투표율에 근거해 대선의 의미를 재점검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출구조사의 어떤 부분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은 다른 부분들도 그냥 신뢰하기 곤란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그간의 보도가 머쓱했던지 선관위 발표를 조용히 단신으로 내보내며 대충 넘어가려는 듯하다.

언론사들은 정황상 신빙성이 충분한 조사 결과를 전했을 뿐 큰 책임이 없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중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출구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1.2%포인트였지만, 실제 차이는 3.53%포인트였으니 출구조사의 오차범위 ±0.8%포인트를 꽤 벗어났다. 그러므로 이미 선거 다음날부터는 출구조사 자료들에 대해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그러기보다 경이적인 것에 대한 애호를 평소보다 더 호들갑스럽게 표출했다.


생각해보면, 전후 베이비부머인 한국의 50대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역동성을 보인 세대다. 예컨대 그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 3부제 수업이 이루어졌고, 중학교에 갈 때는 무시험 진학이 도입되었으며, 고교 평준화도 이 세대의 진학 증가로 인한 것이다. 그들이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는 리듬은 주택시장을 흔들어왔고, 지금도 그들의 은퇴가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지금 격심한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2차 베이비부머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치적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68혁명의 주역이 된 선진국 베이비부머와 달리 우리 사회 베이비부머들은 박정희의 고등교육 억제 정책으로 대학을 간 사람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대다수가 대학이 주는 의식의 해방을 별로 경험하지 못하고 유신시대 중·고등학교 경험을 끝으로 학교생활을 마쳤다. 이들에게 대학은 정신적 해방보다는 소득, 자산 그리고 위신의 핵심 요인으로 여겨졌고 그런 만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이 세대 안에서 위력을 떨쳤다. 그 결과 정치적 세대로서의 영광은 고등교육 팽창기의 첫 세대인 ‘386’에게 넘겨졌다.


그런 세대가 모처럼 대선에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무튼 그들은 가장 많이 투표한 연령집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엉터리 출구조사와 그것에 덩달아 춤을 춘 언론 보도는 그들의 정치적 커밍아웃에 걸맞은 의미 획득을 방해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과도하게 놀랐고, 지금 그 놀람의 반사작용으로 그들의 세대적 주장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82.0%에 정확히 부합하는 그 세대에 대한 분석과 의미 부여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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