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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여성대통령은 여성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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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4-24 16:38 조회15,7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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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인사 난맥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쳤다. 하지만 그 지지율에는 뚜렷한 성별 격차가 있다고 한다. <내일신문>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남성은 50.6%였는 데 반해 여성은 10%가량 높은 60.6%였다. ‘경제살리기를 잘할 것’이라는 데 남성은 62.8%만 동의했지만 여성은 71.1%나 동의했다. 그가 들었던 손지갑과 핸드백이 동이 나고, 액세서리점이 브로치를 한 그의 사진을 내걸고 호객을 하는 것도 이런 여론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성 대통령을 여성이 더 지지하는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거는 여성의 기대도 한몫하고 있을 터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는 성별 격차가 큰 나라다. 교육에서의 성차별은 극적으로 줄었지만, 취업 등에서의 차별은 여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가 올해 내놓은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녀 고용률 격차는 오이시디 평균인 13%보다 훨씬 큰 21%에 이르고, 고용 안정성의 평등도는 31개국 가운데 30위, 급여 부분은 30개국 중 꼴찌다.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해 출산율이 세계 최저로 떨어진 것은 이런 현실의 결과물이다. 여성들이 박 대통령에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니만큼 이런 여성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개선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롤 모델이라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우를 생각하면 일말의 불안이 없지 않다. 어제 장례식을 치르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대처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최장수 총리였다. 1979년 그가 총리가 됐을 때, 영국 여성계는 여성 지위 향상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물론 대처는 여성 총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공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그를 롤 모델 삼아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그의 기여는 딱 거기까지다. 그는 재임 11년 동안 여성 각료를 단 한 명만, 그것도 덜 중요한 부서에 겨우 2년 기용했을 뿐이다. 또 대처리즘을 앞세운 각종 복지혜택의 축소는 여성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노동당 각료였던 퍼트리샤 휴잇은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일을 그렇게나 많이 한 것은 비극이다. 그는 일터에서 여성의 지위에 손상을 입혔고, 가족과 공동체를 약화시켰으며, 공직생활 중 여성을 위해 아무 일도 안 했다. 엄청난 기회의 낭비였다”고 개탄했다. 한 여성의 성공이 여성 전체의 지위를 높이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 대통령은 어느 쪽일까? 선거 과정에서 ‘여성’임을 내세웠던 그가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여기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선거 때의 여성 관련 공약도 잊지 않고 잘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각료 인선부터 그렇다. 박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선출된 역대 남성 대통령들보다 더 여성 발탁에 인색했고 무능했다. 여성부 장관을 빼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겨우 하나 발탁했는데 그마저 청문회에서 자질 부족을 드러내 개그 대상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은 그런 그를 고집스럽게 임명했지만 이는 여성을 돕는 게 아니라 욕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출발선을 막 넘은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지금 당장 접고 싶진 않다. 아직 그가 여성을 위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오이시디는 여성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도 그들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현재의 사회구조를 혁파해야만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양성 평등한 일터와 가정을 만드는 것은 여성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한 긴급처방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제라도 적재적소에 여성을 과감하게 발굴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각종 걸림돌을 치우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여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요청하는 까닭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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