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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죽음을 유예하는 SF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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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4-24 17:08 조회15,9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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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면 공룡 피를 빨아먹다가 화석이 된 모기 피에서 공룡 유전자(DNA)를 추출해 공룡을 복제하는 얘기가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점심 식탁 위에 올라온 생선을 보관하던 냉장고가 떠올랐다.


공룡 부활의 단초가 되는 모기 피는 모기 신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호박(琥珀)을 통해 추출된다.


원리상으로만 보면 이런 메커니즘은 냉장고의 냉장ㆍ냉동 기술도 별다른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마켓 냉장 진열장에서 식품을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신선도`란 무슨 뜻인가? 인간 관점에서 먹기 좋은 상태를 뜻하는 신선도란 적정 수준 냉기를 통해 생물의 물리적 부패를 저지한 결과다.


그것은 생물 유전자를 가능한 한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는 기술력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호박 속 모기 피가 실험실로 가고, 일상의 냉장고 속 동식물은 인간 위장으로 들어가는 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식품 저장고`처럼 보이는 냉장고를 좀 더 긴 주기로 사용하게 되면, 공상과학영화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영화 `에이리언`을 보면 엄청난 속도로 몇십 년, 몇 백 년 거리 떨어진 별로 항해하는 우주 비행사 이야기가 나온다. 고작 100년 이하 수명을 지닌 인간이 우주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간 아주 `긴 잠`을 잔다. 이 긴 잠은 죽음 상태와 비슷하지만, 생물학적 부패와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밀히 죽음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개 그들의 수면은 적정한 냉동 상태를 유지하는 인큐베이터(냉장고) 안에서 이루어진다.이러한 발상은 수만 년 전에 지구에 왔다가 남극에 잠들어 있던 외계인이 깨어난다는 영화 `X파일`도 마찬가지다.


결국 냉장고는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SF적인 사물이자, 완전한 생물학적 죽음을 저지하고 유예시키는 신화적 사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냉장고가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과연 냉장고라는 저장고가 없었더라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동물 도축과 바다생물 포획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음식 문명이 가능했을까.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MK뉴스, 201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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