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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이념의 사대성(事大性) 극복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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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13 14:59 조회16,8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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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대선의 후폭풍으로 생존의 기로에 선 진보 정치세력의 근원적 성찰모색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심 가치이념과 합종연횡과 안철수가 주요한 화두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열쇠말은 민생 노동 협동 연대 인권 녹색 등이다. 사민주의를 간판으로 삼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감동과 기대를 주는 진보의 대변신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좀 회의적이다. 빠진 것은 '대한민국이 어디 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특히 양극화 일자리 등 주요 현안 문제에 대한 원인 파악과 종합적 해법이다. 이것이 없거나 부실하다 보니 노동중심성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 노동을 너무 모른다.


대기업 노동자도 엄밀히 따지면 산업생태계의 '갑'


단적으로 노동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노동은 실은 조직노동이다. 1750만 임금근로자의 최상층150만을 넘지 않는다. 이들은 철도공사 같은 공기업 종사자거나 현대·기아차 같은 대기업 종사자다. 산업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는 슈퍼 '갑'의 일원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하는 일과 누리는 처우가 서로 조응해야 한다는 공평(형평) 개념이 흐릿하다. 단순한 일을 한다고 해도 기업 지불능력과 노조 투쟁력이 허용하면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의 질 혹은 실력을 올려 처우를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시장경쟁이라는 파도를 막아주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쳐진 곳, 즉 슈퍼 '갑'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한마디로 귀족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다. 극심한 교육시험 경쟁의 본질이자 협동교육이 안 되는 이유다.


또한 노동 대 자본이라는 교과서적인 대립구도 보다 '갑' 대 '을' 혹은 '성안 사람' 대 '성 밖 사람'이라는 학문 족보에 없는 대립구도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국에서 노동을 얘기하려면 1750만 명을 세분화해서 살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하는 고용형태 외에도 산업별 규모별로 산업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지위(갑을)별로 경영실적별로 소득세와 연금 납부 여부 등으로도 살펴야 한다.


동시에 이들이 속해 있는 기업과 산업과 시장을 살펴야 한다. 나아가 경제활동인구 2500만 명과 비경제활동인구 속에 숨어 있는 300만명의 사실상 실업자도 살펴야 한다. 진보의 사상 이념적 진화변신 과정에서 반드시 건너야 할 강 중에 하나가 부가가치(GDP)의 생산·분배구조 파악이다.


우리나라 GDP가 100이라면, 노동(임금근로자) 몫이 대략 50이고, 자영업자 및 기업 몫(영업잉여)이 30, 기타(감가상각 등)가 20이다. 만약 노동이 50단위라면(실제는 1750만 명) 노동 1단위의 평균 몫은 1이다. 그런데 공무원과 힘센 '갑'들이 많이 가져가면, 나머지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노동 1단위 몫을 늘리는 방법은 기업 몫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고, 노동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노동이 25단위가 되면 노동 1단위의 몫은 2가 된다. 이렇게 되면 좋은 곳(산업·기업)에 들어간 노동은 살맛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죽을 맛일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한국현실을 직시해야 미래가 있다


그런데 정년 보장 확실하고, 1인당 GDP의 2~4배를 받는 공무원과 현대·기아차 노조원을 정상으로 여기는 진보가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바로 이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세상이 아니라, 영혼을 팔아서라도(뇌물을 줘서라도)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하는 세상이다.


진보든 보수든 사상이념의 사대성 내지 식민성을 극복해야 한다. 이 관건은 진보 이념의 원산지인 대륙 유럽과 한국의 부가가치 생산분배 구조와 고용임금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눈과 머리로 한국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쪽에 미래가 있지 않을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내일신문, 201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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