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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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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9-11 13:03 조회17,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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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이 4일 근현대역사교실이란 의원모임을 출범시켰다. 출범식에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못난 역사로 비하되고 한국을 부정하는 역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질 때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가 어지러워져 이석기 사건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며 “역사를 바로잡을 방안을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가 역사전쟁의 진군나팔을 분 다음날 우편향 사실왜곡으로 비판받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과 그들이 속한 신우익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 회원들은 심포지엄을 열고, 기존 역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을 극복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싸잡아 비판했다. 그들은 현장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교학사 교과서 비판자를 반민주세력으로 몰아가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 자학사관에 빠진 기존 역사교육을 바로잡아 자랑스런 역사를 전해야 한다는 이 주장,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일본의 전후 역사 교육은 … 일본인의 긍지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근현대사에서는 일본인이 자자손손까지 계속 사죄할 운명을 타고난 죄인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냉전 종결 후는 자학적인 경향이 강화돼 … 종군위안부 같은 옛 적국 프로파간다를 사실로 기술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일본 국가와 일본인의 자화상을 품격과 밸런스를 가지고 그림으로써 선조들의 활약에 감동하게 하고 실패의 역사에도 눈을 돌리게 하는 …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역사왜곡으로 해마다 우리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돼온 일본 ‘새역모’의 취지문이다.

새역모가 만든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한국현대사학회 일원인 허동현 교수는 “자긍 과잉과 성찰 결여로 요약된다. 성찰이 결여된 과거사 학습은 한 민족이나 국가의 미래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비판했다. 이어 왜곡세력이 침략에 대한 반성을 자학이라고 매도하며 역사의 기억에 분칠하려는 이유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한 세력의 적자로서 제국 일본의 옛 판도와 영화를 되찾고 싶어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옳은 지적이다. 문제는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이런 비판은 그가 지지하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교과서의 필자 권희영 교수는 20세기 역사는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역사라며 우리 근현대사도 자유민주주의 체제 발전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적 주장이지만, 그의 주장에 비춰 봐도 이 교과서 기술은 이상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한다면, 역사 평가의 잣대는 인권 보호와 주권재민이란 그 핵심 가치 구현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대 민족자결권을 유린한 일제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복권을 꾀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해 쫓겨난 독재자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든 위대한 인물로 추어올렸다. 박정희 쿠데타는 미국의 지지 등을 거론하며 그 부당성을 희석했고, 종신지배를 위한 그의 10월 유신은 미-소 데탕트에 대한 대응으로 설명했다. 전두환의 광주학살은 계엄군의 광주 장악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얼버무렸다.

왜일까?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유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고 냉전적 반공주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부각시키는 북한은 원조로 연명하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들 말대로 남·북한 체제 경쟁은 남한의 완승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당 대표가 제1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라고 비난하는 등 여전히 철 지난 반공 칼춤을 추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친일 세력과 쿠데타 세력의 적자인 현 집권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며 권력을 유지하게 해온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북세력의 진정한 숙주는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해 시대착오적 주사파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키워온 수구우익세력이다. 자랑스런 우리 역사는 좌파에 대한 역사전쟁의 승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더 성숙한 민주국가를 가꿔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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