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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관악(觀樂), 음악을 통해 천하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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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14 조회17,5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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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54년, 중국 동쪽 노(魯)나라에서 펼쳐진 광경이다. 오나라의 사신 계찰(季札)이 노나라에 갖추어진 음악을 듣기를 청한다. 노나라는 제후국이었지만 천자의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시조 주공(周公)을 기리는 뜻에서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이 허락한 일이었다. 천자의 음악이므로 천하의 음악이기도 했다.


먼저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노래가 연주된다. 주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되기 전의 노래였다. 계찰이 듣고 말한다. “세상이 안정되지 않아 백성들은 여전히 수고롭지만 그럼에도 원망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군요(勤而不怨).” 이어서 다른 지역의 노래가 연주된다. 계찰이 다시 평한다. “걱정하면서도 그렇다고 마냥 괴로워한 것만은 아니군요(憂而不困). 필시 위(衛)나라의 노래겠습니다.” 그 노래는 《위풍(衛風)》이었다.


이어서 《왕풍(王風)》의 노래를 들려주자 이번에도 계찰은 서슴지 않고 감상을 말한다. “근심하면서도 두려워하지는 않는군요(思而不懼). 그러니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긴 다음의 음악으로 보입니다.” ‘제(齊)ㆍ빈(豳)ㆍ진(秦)ㆍ위(魏)ㆍ당(唐).’ 오늘날 『시경(詩經)』의 ‘국풍(國風)’으로 전해지는 노래들이 이어졌고, 계찰의 논평도 막힘이 없었다. 『시경』《소아(小雅)》의 시를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는 “선왕의 德을 그리워하여 딴 마음을 품지 않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도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군요(思而不貳, 怨而不言)”라고 한다.

《송(頌)》의 노래를 들은 다음에 들려주는 감상평은 그 자체로 유장한 음악이다. “곧으면서도 오만하지 않군요. 굽히지만 굴복은 아니고요. 가까이 하되 마구 달려들지는 않고, 거리를 두되 멀어지지는 않는군요. 슬퍼하되 근심으로 흐르지는 않고, 즐거워하면서도 마냥 즐거움에 빠져 있지는 않는군요.”


계찰이 정말 듣고 싶은 것이 노래였을까. 계찰은 여러 지역의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들이 모여 빚어내는 천하를 그렸을 것이다. 관악(觀樂), 음악은 듣는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천하를 보고자 한 것이다. 그 천하는 각기 다른 노래만큼이나 다양한 나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그 ‘다름’을 들을 수 있어야만 천하가 보인다. 계찰의 감상평은 늘 같음 속에 다름의 공존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수고롭지만 원망하지 않는다(勤而不怨)’는 계찰의 말이 ‘즐거워하되 음란에 빠지지 않는다(樂而不淫)’는 공자의 말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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