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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신호등-왜 빨간색을 보면 멈춰 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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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08 16:33 조회17,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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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빨강, 파랑. 신호등 색깔 점멸 순서다. 사거리 교차로에서는 이 순서에 좌회전 신호가 첨가된다. 대체로 주황, 빨강, 좌회전 신호, 파랑 순서다. 교차로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빨간색 불이 켜지고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건너간다. 늦은 출근길에 조급했던 필자는, 빨간색 불이 꺼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 액셀러레이터로 옮긴다. 그러나 아뿔싸! 좌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크게 당황해서 발을 다시 브레이크로 옮겨 밟는다. 이 교차로는 빨간색 다음에 좌회전 신호가 아니라 직진 파란색 신호가 먼저 떨어지는 신호등이었던 것이다.

우리 몸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이렇다. 직진과 좌회전과 정지를 명하는 지시등인 신호등은 현대인 신체에 각인된 무의식적 동선 체계이기도 하다. 일단 조직되고 각인된 신체 패턴은, 사물은 하던 대로 하려 한다는 뉴턴의 관성 법칙과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신체 동선을 무조건적으로 명령하는 이 사물은 대체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이 사물의 빨간색을 보면 `무조건` 서고, 파란색을 보고는 `착하게` 움직이는가.

문제는 따지고 보면 빨간색과 `정지`라는 명령 사이에는 본래 필연적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파란색과 `직진` 지시 사이에는 아무런 의미 연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일단 정해진 신호등 체계에서 살게 되면, 신호등 색깔과 지시 명령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몸은 그 믿음을 의심 없이 `무조건적으로` 쫓아간다.


기호 표현(말ㆍ문자)과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발견은 현대가 발견한 획기적인 사유의 전환이다.

 
 이 발견은 소쉬르라는 언어학자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화가 마그리트도 `말(馬)` 그림 밑에 `나무`나 `사과` 같은 제목을 임의적으로 붙이는 장난을 하곤 했다.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사는 사회적 기호 체계가 실은 근거가 없음을 꼬집기 위한 것이다. 철학도 예술도, 우리가 그것에 근거해 살고 있는 `상식`이 관성 법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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