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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반지-만남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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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1-06 13:05 조회17,0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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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치장하는 수많은 화려한 장신구들이 있으나 `약속`을 상징하는 장신구는 `반지`가 유일하다. 그래서 결혼식뿐만 아니라 주교나 교황의 엄숙한 서약식에도 신과 맺는 계약의 상징으로서 반지가 등장한다.

보석상들은 다이아몬드 같은 `단단하고 빛나는` 사물이 `영원한 약속`의 의미를 강화하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이 사물이 지닌 약속의 힘은 거기에 무엇을 새겼는가,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가, 어떤 보석을 박았는가 하는 것보다는 다른 데서 나온다.

한 연인이 들판을 걷다가 주변에 널린 풀잎과 꽃잎으로 즉석에서 만든 `풀꽃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며 사랑을 맹세한다고 한들, 그 맹세가 다이아몬드 반지에 미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물의 본질은 `속이 비어 있는 둥근 고리(環)`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지를 뜻하는 영어명은 그저 `둥근 고리(ring)`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사물의 고리 형상은 서로 반대 방향(좌우)으로 향하던 한 직선의 양 끝을 구부려서 원의 형태로 `만난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직선의 좌우 양끝을 구부려서 둥근 고리를 만들려면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한다. 반지의 가운데 뚫린 데는 `구멍`이 아니다. 바꿔 말해 `비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흔히들 반지의 계약적 성격이 손가락을 두르고 있는 이 사물 형상의 구속성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이건 오해다. `구속`이라는 강제성은 진정한 약속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두 존재가 참되게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어설픈 타협이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무궁무진한 힘이다.


손가락이 끼워진 반지는 그래서 누구 손가락에 끼든 간에 하나의 반지만으로도 커플링이다. 이미 반지의 원환 자체가 두 존재의 만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반지의 형상은 손가락을 넣지 않아도 이미 뜨겁다. `둥근 입`처럼 생긴 원환은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뜨거운 침묵으로 긍정의 만남을 얘기한다.

새로운 삶에 대한 국민적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은 1년이었으며, 사회적 갈등이 극한에 달한 연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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