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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도적 개입과 보호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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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12 15:03 조회17,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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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잠시라도 심란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물며 수천, 수만의 인간이 전쟁이나 내전, 학정으로 상상도 못할 인권침해를 당할 때,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이 느낄 동정, 경악, 분노, 무력감은 어떠할까. 어떻게든 피해자를 돕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해자를 저지하고 응징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단순명료한 해결책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또한 동기가 정당하다 해서 그 행동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들어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또는 줄여서 R2P라는 개념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진행형인 시리아 내전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유린 사태, 그리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보고서에서도 ‘보호책임’이 등장했다. 보호책임은 요즘 인도적 개입이라는 말보다 더 자주 거론된다. 그 이유를 캐보면 국제정치에서 인권의 작동방식과 그것의 모순성이 드러난다.

인도적 개입이란 대규모 인권유린 사태 때에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삼아 국제사회가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그 관할권 안으로 군사개입을 하는 것이다. 인도적 개입은 냉전 종식 뒤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 1995년 보스니아 인종청소와 나토 공습, 2003년 다르푸르 내전을 겪으면서 인류 목전에서 벌어지는 무지막지한 참화를 모른 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했던 베르나르 쿠슈네르 같은 활동가들이 초기의 열렬한 주창자였다. 그런데 ‘개입’이라는 말 자체가 19세기 이래 외과적 수술을 뜻하는 의학용어로 사용되었던 선례가 있다. 또한 강대국들의 타국 내정 간섭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도 늘 있었다. 무엇보다 인도적 개입은 주권과 인권을 제로섬 관계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주권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모든 인권침해 상황에 개입하느냐’ 하는 양자택일만 남는다.

코소보 사태를 사후 평가하는 유엔 보고서가 2000년에 나온 적이 있다. 나토의 개입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법적이지만 내용상 정당”했다는 모순적 결론이 내려졌다. 국가주권과 인권보호를 병행할 수 있는 통합논리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마침 남수단의 프랜시스 뎅과 같은 학자들이 ‘책임으로서의 주권’이라는 신개념을 제안해 놓은 게 있었다. 국가가 자국 내에서 절대적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통적 주권 개념이 아니라, 자국민을 보호할 주된 책임이 해당 국가에 있다는 의미로 주권을 재정의한 것이다. 그 뒤 유엔의 위임을 받아 캐나다 정부가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를 발족하여 연구에 착수했다. 2001년 <보호책임>이라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오늘날 보호책임 개념의 원조에 해당하는 문헌이다. 보고서는 외부 개입자의 권리가 아닌, 내부의 잠재적 수혜자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권보호의 전 과정을 책임 개념으로 일관성 있게 파악하고, 국가가 자국민 보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 한해 국제사회의 책임이 발동된다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에 군사개입이 포함될 수 있지만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고려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규정되었다. 인도적 개입을 원칙상 인정하면서도 인간을 보호할 책임이라는 큰 퍼즐그림의 한 조각으로서 극히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본 것이다.

<보호책임>의 내용은 코피 아난의 2005년 유엔 보고서 <더 큰 자유 속에서>에 중요하게 인용되었다. 아난은 평화, 인권 그리고 발전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 의존하며, 그 목표를 위해 전 인류가 서로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9월 유엔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정상회의가 열렸다. 회의 말미에 채택된 <결과문서>에서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이 명기되었다. 하나의 개념이 국제규범으로 결정화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결과문서>에서 다룬 보호책임은 <보호책임> 보고서보다 범위가 작고 강도가 약하다. 보호책임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을 제노사이드,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도적 범죄 등 4가지 범죄에 한정했다. 개별국가한테 일차적 보호책임이 있고 그 책임이 ‘명백히 실패’했을 때에 국제사회가 그 국가를 지원할 책임이 발생한다고 했다. 또한 이런 상황을 미연에 탐지할 조기경보 능력을 유엔이 배양해야 한다고 했다. 중대한 인권침해 사태 때 국제사회가 유엔을 통해 외교적·인도적·평화적 수단을 강구할 책임이 있는데, 평화적 수단만으로 해결이 안 될 때엔 국제사회가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사안별로, 유엔 안보리를 통해 집단행동에 나설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세계 정상들은 “국가가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역량을 키우도록 지원할 의지가 있고, 위기와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국가를 지원할 의지가 있다”고 다짐했다.


2005년의 <결과문서>는 일종의 타협이었다. 우선 수사적 차원에서 보호책임 개념을 국제규범에 준하는 위치로 승격시킨 건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엔을 통한 문제해결을 적시하고, 외부 책임보다 내부 책임에 방점을 두며, 개입할 ‘의무’보다 ‘각오’를 강조한 문헌이었다. 따라서 <결과문서>에 묘사된 보호책임에 따르면 모든 인권침해 사태에 대해 외부에서 반드시 개입할 ‘의무’가 있다기보다, 사안별로 외부에서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결과문서>를 구체화하기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9년 <보호책임의 이행>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여기서 보호책임은 세 기둥을 가진 통합체로 묘사되었다. 첫째 기둥은 해당 국가의 보호책임을 거론하면서 인권존중이 ‘책임 있는 주권’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한다. 둘째 기둥은 취약 국가의 내부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지원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개도국에 대한 개발원조도 중요한 인권 보호책임에 속한다. 셋째 기둥은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대응이다. 여기엔 경고, 제재, 무기유입 제한 등 강압적 조처가 포함된다. 최후의 수단으로 신속대응군의 투입도 고려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권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보호책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첫째, 보호책임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므로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보호책임은 인권침해가 있을 때 외부에서 무조건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면허증이 아니다. 또한 인도적 군사개입의 완곡어법 혹은 세련된 표현도 아니다. 보호책임은 책임으로서의 주권, 국가의 일차적 보호책임, 점진적 단계들로 이루어진 총체적 접근을 강조한다. 보호책임을 군사개입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무지한 왜곡에 불과하다. 둘째, 보호책임의 동기가 무엇이든 결국 그 실행은 지배-저항 논리의 충돌과 이해타산의 역학관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인도주의와 보편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싶어하는 미국과 프랑스가 보호책임에 특히 열성적이고, 쿠바, 니카라과, 이란, 파키스탄, 수단, 베네수엘라, 알제리, 볼리비아, 북한, 리비아, 에콰도르, 시리아 같은 나라들이 그것을 특히 반대하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셋째, 보호책임이 실효를 거두려면 동기만큼이나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권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득이 되는 길을 ‘사안별로’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리비아는 반군의 영토 장악력이 강했고 정규군이 약했으며 인근 지역에 불안정을 초래할 위험이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정반대다. 따라서 리비아와 시리아는 서로 다르게 취급할 수밖에 없다. 절박한 심정, 동기론적 이상주의, 일차원적인 정의감, 그리고 단기적 개입으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어하는 군사적 낭만주의의 유혹이 합쳐질 때 상황이 더 악화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책임의 첫째, 둘째 기둥은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이지만, 셋째 기둥은 국제사회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잠재적 권리에 가깝다. 세상의 그 어떤 문제도 갑자기 생겨나지 않으며 단칼에 해결되지 않는다. 더 공정한 세계를 향해 소걸음처럼 계속 노력하면 인권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 있다. 병원 응급실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한들 평소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는 것과 비교할 순 없지 않은가.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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